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군 (문단 편집) === [[유비]] 휘하에서 === 처음에는 예주자사로 있던 '''유비에게 앞서 출사'''했었다.[* 진군의 아들 진태가 훗날 번번이 [[강유]]의 북벌의 발목을 잡는 미래를 생각하면 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생각해보면 출사를 유비 진영에서 하고, 조위의 명목적 창립자인 조비를 태자 시절부터 측근으로 보좌해 [[조위사우]]의 일원까지 되고, 같은 조위사우에는 [[사마의]]가 있었다. 삼국시대의 두 나라의 황제와 최후의 승자인 서진의 지도자들과 모두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던 특이한 인물.] 별가 자리에서 일했는데, 194년에 서주목 [[도겸(삼국지)|도겸]]이 죽어 서주가 혼란해지자 유비가 서주를 아우르려 할 때 "[[원술]]은 아직도 세력이 강대하므로 지금 동쪽으로 간다면 반드시 그와 싸우게 될 것입니다. 또 [[여포]]가 만일 장군의 뒤를 습격한다면, 장군은 설령 서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일은 반드시 성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에 정말로 여포가 쳐들어와 유비는 진군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달아났다. 진군은 아버지와 함께 야인으로 물러나 피난살이를 했으며, 문재로 천거되어 현령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