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군 (문단 편집) === [[조조]] 휘하에서 === 198년에 조조가 여포를 멸하자 조조의 밑에 들어가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왕모와 주규를 천거했을 때 진군은 이들이 악하다고 반대했지만 조조는 진군의 말을 듣지 않고 이들을 등용했다. 후에 왕모와 주규는 잘못을 저질러 처형되었고 조조는 진군에게 사과했다. 진군은 [[진교]]와 대건을 조조에게 천거했는데, 진교는 명신이 되어 상서령까지 올랐고, 대건은 오나라 사람이 모반하자 충의를 다하여 위험 속에서 죽었다. 당시 사람들은 진군이 사람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214년에 어사중승의 자리까지 올랐다. 조조가 육형(肉刑)[* 신체를 손상시키는 형벌이다.]을 부활시키려고 하였을 때, 부적절한 사형을 줄일 수 있다는 관점에서 [[종요]]와 함께 찬성했다. 그러나, [[왕랑(삼국지)|왕랑]](王朗) 등의 반대로 인해 무산되었다. 곽가전에 따르면 진군은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 대단히 엄정하였는데 조조의 최측근 모사인 [[곽가]]의 행실이 바르지 못한 것을 지적하여 여러차례 고발했다. 조조는 곽가를 감싸주었지만, 진군의 엄정함도 높이 평가했다. [[유이(삼국지)|유이]]는 동생이 [[위풍]]과 반역을 도모한 것에 연루되어 사형당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진군이 조조에게 청하자 조조는 유이를 사면해주고 유이의 관직을 회복시켰다. 유이가 진군에게 감사해하자 진군은 >"대체로 형벌에 대한 논의는 국가를 위한 것이지 사사로운 정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것은 성명한 군주의 의향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내가 어찌 할 수 있었겠습니까?" 라고 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