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궁(삼국지톡) (문단 편집) == 캐릭터 묘사 == 삼국지톡의 '''최고의 수혜자 중 하나'''. 여러모로 모든 삼국지 관련 창작물 중 가장 정사의 진궁에 가까운 모습을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는다. 다만 정사의 진궁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배신의 아이콘 또는 냉혹한 인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반면, 삼국지톡에서는 [[여백사]] 사건에 동행한 부분에서는 연의를 취사선택하고 조조가 연주를 지배할 때는 조조를 도왔던 시절은 정사를 따라가면서 조조와의 관계는 더욱 자세히 묘사되었고 조조의 잔혹함에 실망하는 부분이 강조된다.[* 진궁이 조조를 배신한 이유를 서주대학살 혹은 변양 살해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삼톡에선 생략됐지만 실제로는 변양 본인은 물론 처자식이 몰살당했다), 삼국지톡에서는 이 두 사건이 모두 원인이 된 데다가 연의에 나왔던 여백사 사건까지 오버랩되었다고 묘사한다.] 또한 여포의 답없음, 장막 죽음 이후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진궁의 상황을 풍부하게 설명하여, 진궁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하였다. 그 결과 2000년도에 이르러 진궁이 재평가받고 있던 것을 감안해도 삼국지톡의 진궁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 입체적인 매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연의에선 여백사 이후 잠시 떨어지게 되며 정사에선 서주 대학살 시점에서 남남이 되는데 삼톡에선 여백사 사건에서 연의를 주로 삼으면서도 '그래도 진짜 이 이상 쓰레기는 아니지 않을까?'라며 반쯤 자포자기 심정에다 실낱 같은 희망[* 정확히는 거기다 '조조가 이 사달을 내는 데 나도 동조했으니 똑같은 쓰레기다, 누가 누굴 탓하냐'는 식의 자괴감과 '이놈을 내 눈앞에 두고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책임의식이 더해졌다. 진궁이 간과한 건 조조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막 나가는 놈이었다는 것.]을 가진단 식으로 남아 있어 이후 배신의 기반을 잡았다. 이로서 조조를 옆에서 보좌하면서도 그의 잔혹함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기에 [[서주 대학살|훗날 조조가 벌일 큰 사건]] 이후의 모습이 기대되는 효과가 생겼다. 캐릭터성 측면에서는 선이 굵직하고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형의 다소 껄렁한 골초 아저씨로 나온다. 연주에 조조 영업을 갈 때는 말쑥하게 차려입었는데 병사들이 그걸 보고 놀라기도 했다. 성격은 조금 냉소적이고 무심한 듯하면서도 작정한 일에는 굉장히 열정적이고 끈질긴 타입이었는데, 서주대학살을 계기로 조조를 등진 뒤로는 그를 죽이는 데 모든 것을 걸면서 정신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점점 피폐해져 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