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동한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1961년 6월 4일 경상북도 영일군(現 포항시)에서 아버지 진대락(陳大洛, 1899 ~ 1977. 1. 11)과 어머니 [[안동 권씨]] 권남득(權男得, 1909. 10. 20 ~ ?)[* 권영우(權寧佑)의 딸이다.] 사이에서 2남 3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야구부|고려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1987년]] 12승을 올리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이후로 성적이 하락해, [[1990년]]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로 현금트레이드되었고 [[1992년]] 끝내 은퇴했다. 전성기는 짧아 통산 성적은 그저그런 수준. 그러나 아직까지 이 선수가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그 유명한 '''[[해태 타이거즈 버스 방화 사건]]'''의 발단이 된 선수였기 때문이다. [[1986년 한국시리즈]] 1차전 광주경기 때 3회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7회말까지 잘 막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다가 해태 팬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고 교체되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투수는 [[김시진]]으로 교체되었고 이후 김시진이 불을 지르며 역전패했다. 한창 잘 던지고 있던 선수가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교체되고 경기마저 패하자 [[대구아재|삼성 팬]]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3차전 대구 경기에서도 삼성이 역전패를 당하자 분노한 삼성 팬들은 경기 후 해태 구단버스에 불을 질러 분풀이를 한 것. 이 구단 버스 방화사건은 [[한국프로야구]] 관중 난동 사건하면 늘 언급이 되며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봉연]], [[김종모]], [[김성한]], [[송유석]] 등이 술회하길 야구장비, 옷 등이 불에 타버렸으며 송유석은 월급 20만원을 찾아 좌석 밑에 넣어놨으나 이 역시 --활활 잘-- 타고 말았다.] 은퇴 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스카우트로 있었다. 그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장충고 감독[* 부임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고교야구]] 전국대회 8강에 오르지 못했다. 장충고 야구부는 2003년 [[유영준]] 감독 부임 이후 전성기를 맞았다.], 개성고 감독[* 2006년 [[황금사자기]] 8강 진출 이외에 실적을 내지 못했다.], 서울고 코치[* 2007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제자 이형종의 눈물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제일고등학교]]에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했다.], 구미 도산초등학교 코치를 거쳐 도산초 감독, 울산공고 감독, 저니맨 외인구단 감독을 거쳐 포항대해초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했었고[* 현역 시절 배터리로 호흡을 맞췄던 [[이만수]]가 피칭머신을 기증했다.] 현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유소년야구단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