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랑 (문단 편집) == [[삼국지(정사)|정사]] == 아명 때문에 어릴 때는 진소라고 불렸다. [[진의록]]과 [[두씨]] 사이에서 나온 아들로 두씨를 [[조조]]가 데려갔기 때문에 조조 밑에서 길러진다. 같은 의붓아버지를 둔 [[하안]]과 친했다. 조조는 양아들을 친아들과 똑같이 대했다고 한다. 공이 없는데도 제후들과 같은 곳에 껴서 놀아도 조조와 [[조비]]에게 책망 받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조예]]가 즉위하자 표기장군 급사중이 되어 조예를 호위했다. 조예가 적발하고 드러내는걸 좋아해 경미한 일로 사형에 처해지는 사람들이 자주 있었는데 진랑은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조예가 좋아했다. 조예는 진랑을 아명으로 부르면서 수도에 큰 집을 지어주고 온갖 금품을 내렸다. 진랑은 황제와 친하단 이유로 뇌물을 받아먹으니 공이나 후에 비할 정도로 재산이 많았다. 233년에는 [[가비능]], [[보도근]]을 무찌르러 출발해 전투 하나를 승리로 이끌고 보도근 휘하의 설귀니의 항복을 받아낸 후 귀환했다. 234년에 오장원 전투에서 병사 2만을 이끌고 원군으로 참전했다. 237년 조예가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지자 조예는 조우, [[조상(삼국지)|조상]], [[조조(둔기교위)|조조]](조휴의 아들), [[하후헌]] 등과 함께 진랑에게 어린 아들 [[조방]]을 맡기려 하였다. 이를 보아 진랑은 거의 조씨 일족에 가깝게 대우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대로 이루어졌다면 조우가 황제 조방을 밀어낼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무난하게 조씨 일족이 위나라를 이어갔을 것이다. 조예의 측근인 유방과 손자는 조조, 진랑 등과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다급해졌다. 이들은 정신이 혼미한 조예를 설득해 진랑, [[조우(삼국지)|조우]] 등을 파면하고 조상과 사마의 두 사람에게 후사를 맡기게 했다. 아들로 [[진수(서진)|진수]]가 있다. [[삼국지 정사]]의 저자인 [[진수(역사가)|진수]]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