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무공 (문단 편집) === 곡옥백 시절 === 곡옥 무공은 처음에는 [[진애후]]에게 패배해 화평을 청하면서 힘을 길렀다. 진 애후 8년(기원전 710년), 진 애후가 형정 땅을 침범하자 곡옥 무공은 형정 사람과 힘을 합치고 이듬해 봄에 익을 치기 위해 형정에 주둔해 한만을 여융, 양홍을 거우로 삼아, 애후를 분수(汾水)가에서 사로잡았다. 하지만 진나라에서 소자후를 세우자 곡옥 무공은 인질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 진 애후를 살해했다. 진 소자후 3년(기원전 706년), 소자후를 유인해서 살해했으나 그 대가로 [[주환왕]]이 괵중을 보내 [[곡옥]]을 치자 수도를 지키기 위해 회군했다. 그리하여 주 환왕은 진후 민[* 진나라 즉 익나라의 마지막 후작이라서 시호가 없다.]을 옹립한 뒤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아직 주나라의 힘이 적지 않게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것은 《사기》의 내용이다.] 진 소자후 4년(기원전 705년), 《춘추좌씨전》에 따르면 소자후를 유인해 죽인 것이 이 해라고 적고 있어서 기록에 따라 연도가 다르다. 진후 민 원년(기원전 704년), 익을 멸했으나, 주 환왕이 괵중으로 하여금 진후 민을 옹립시켜 익을 부흥시키는 바람에 물러나는 수 밖에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후 민 2년(기원전 703년), 진 무공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쳤으니 괵중, 예백, 양백, 순후, 가백이 연합하여 진 무공을 쳤다. 진후 민 28년(기원전 679년), 수십년의 어려운 싸움 끝에 진, 즉 익을 쳐서 멸하고 진후 민을 몰아냈다.[* 일설에는 진 무공이 죽였다고 한다.] 진나라의 병력을 [[주희왕]]에게 뇌물로 바치고, 1군만 두는 조건으로 곡옥 백에서 진 후로 승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