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성여왕 (문단 편집) === 즉위 배경 === 제48대 [[경문왕]]과 [[영화부인]] 사이의 2남 1녀 중 셋째이자 [[고명딸]]로, 제49대 [[헌강왕]]과 제50대 [[정강왕]]의 여동생이었으며, 두 오빠에게는 서자인 [[효공왕]](제52대)을 제외하고는 아들이 없었다. 정강왕 김황은 왕위에 오르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병이 들었는데, 승하하기 전에 "누이동생 만이 총명하며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전례도 있으니 잘할 것이다."라며 후계자로 지명했으나 '총명하다=좋은 군주'는 아니었다. 외모에 대해서는 오빠 정강왕이 남긴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totalCount=0&prevPage=0&prevLimit=&itemId=sg&types=r&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sg_011r_0060_0060&position=-1|유조]]에 따르면 "골격이 흡사 건장한 사내와 같다"라고 적혀 있다. 어지간한 남자들 못지않게 체격이 컸던 듯하다. 이와 같이 [[신라]]의 왕통은 [[왕자]]에게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공주]]에게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왕자가 없는 경우에 공주나 왕서(王壻, 군주의 [[사위]])가 계승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2대 [[남해 차차웅]] 승하 직후 아들 [[유리 이사금|유리]]와 사위 [[탈해 이사금|석탈해]]가 왕위 계승을 두고 다투고 있는 것에서부터 신라의 왕위 계승을 보면 이러한 사실이 추측된다. 따라서 진성여왕은 정강왕 사후 왕위 계승 1순위로 즉위했기에 그 당시 기준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즉위였지만, 후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관점에서는 여자가 왕이 된다는 것이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고, 마침 나라가 무너져가는 시기가 진성여왕과 맞물렸기에 [[망국]]의 원인 중 하나를 진성여왕에게서 찾게 되었다. 다만 더 앞 시대의 [[헌안왕]](제47대)이 친딸이 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위 [[김응렴]]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비록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전례가 있지만 본받을 만하지 않다."라고 선포한 기록을 보아, 9세기 신라 사회에서도 [[여왕]]에 대한 찬반 논란은 존재했다고 봐야 한다. 논란을 떠나서 여왕 자체가 아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조선]]과는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신라 사회 역시 남녀가 완전히 계승권이 대등한 상황은 아니었다. 뭣보다도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왕위 계승은 '여자가 오를지언정 성골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뿌리 깊은 신라 [[골품제]]가 우선 순위가 더 높았던 예시로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며, 성골이 완전히 씨가 마른 진덕여왕 사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골이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게다가 두 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였고, 이때는 [[통일신라]]인데, 여왕이 존재하지 않았던 [[고구려]]와 [[백제]] 계통 지방인들이 더욱 여왕을 부정적으로 보았을 가능성 역시 제기되고 있다. 진성여왕 시호의 '진'([[眞]])자 역시 옛날 두 여왕의 전례를 따른다는 진성여왕의 컨셉과 관련이 있는데, 이 글자는 통일 이전 [[중고]]기 왕실의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진덕여왕]] 때의 [[불교]]적 시호에 집중적으로 쓰였고[* 그리고 '성'([[聖]]) 자 역시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이후로는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다가 진성여왕에 갑자기 들어갔다. 이는 여왕의 즉위라는 특수 상황을 설명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교적 권위 및 과거 두 여왕이 존재했고 나라가 강해지던 중고기 전성기 시절의 향수를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부왕 [[경문왕]]과 [[문의왕후]]가 860년에 혼인한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865년~868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03713|추측]]해볼 수 있는데, 19세~22세 정도의 젊은 나이에 즉위했다는 의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