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소양왕 (문단 편집) === [[장평대전]] === 이렇듯 주변에 있는 위나라, 한나라, 초나라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여 당시 진나라와 맞설 만한 나라는 제나라밖에 없었지만, 진 소양왕 23년(기원전 284년), 연나라의 장수 [[악의(전국시대)|악의]]가 주도한 5국(진한위조연) 연합군이 제나라를 초토화시키면서 당대에 강국은 진나라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진 혜문왕때부터의 친분으로 큰 전쟁없이 지내던 조나라가 국력을 키워 삼진(三晉)[* 과거 진(晉)나라에서 분리된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 동맹이 결속되면서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의 전쟁이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장평대전]]'''이었다. 진 소양왕 47년(기원전 260년), 소양왕은 [[원교근공]] 정책에 따라서 우선은 장수 [[백기(전국시대)|백기]], [[몽오]], [[왕흘]] 등에게 명하여 인접한 [[한(전국시대)|한나라]] 땅인 상당(上黨)을 공격하였고, [[한(전국시대)|한나라]]의 국토가 말 그대로 반동강이 나자, [[조(전국시대)|조나라]]는 고립된 [[한(전국시대)|한나라]]의 상당 땅을 먹어버렸다. [[진(통일왕조)|진나라]]는 이 때문에 [[조(전국시대)|조나라]]로 발길을 돌렸고, 이는 [[전국시대(중국)|전국시대]]의 판도를 바꾼 [[장평대전]]으로 이어졌다. [[장평대전]]에서 승리한 [[백기(전국시대)|백기]]는 조나라 군사 40만명을 생매장하여 조나라를 영원한 2등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은혜를 원수로.~~[* 당시 소양왕의 즉위를 도운 조 무령왕은 이미 사구정변에서 살해당한 뒤였고, 대학살은 백기가 알아서 저지른 거라 소양왕과는 크게 상관없기는 했다.][[장평대전|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그리고 [[장평대전]] 후에는 천하에 [[진(통일왕조)|진나라]]와 상대할 수 있는 국가가 없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