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평 (문단 편집) == 평가 == * [[한삼걸]]에 진평을 추가해 "한四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거기다가 [[팽월]] 정도가 능력만 따지면 한삼걸과 견줄 만한 공로가 있다.] [[전한]](西漢)의 건국, 보국과 안정(安定)에 수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건국에 세운 공으로만 따져본다면 진평과 같이 크게 공을 세운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팽월, 조참 등. 진평의 진정한 활약은 한나라 건국 이후부터 나온다. 그래도 초한쟁패기 시절에도 초나라의 브레인 [[범증]]을 리타이어 시키는 등 공로가 전혀 작지 않았다.] 결국 계책과 처세술에 매우 능한 인물이라고 평할 수 있다. * [[사마천|태사공]]은 진평을 그의 열전인 진승상평세가의 말미에서 이렇게 평하였다. >「승상 진평은 젊었을 때 원래는 황제와 노장의 학설을 즐겨 배웠고, 그가 마을의 제사를 주제하여 도마 위의 고기를 썰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때 이미 그의 포부는 원대했다. 이윽고 초와 위 두 지방을 오가며 안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결국은 고조에게 귀의하여 항상 기묘한 계책을 내어 분규로 인해 생긴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게 했으며, 나라의 걱정거리를 해결했다. 이윽고 여후 시대가 되어 나라에 여러 가지 변고가 많은 중에서 진평은 그 화를 피하고 마침내는 한나라의 사직을 안정시킴으로 해서 영예로운 이름을 지니고 최후를 맞이하고 어진 재상이라고 칭송되었으니 어찌 시작과 끝이 모두 훌륭하다고 할 수 없겠는가? 참으로 어느 누가 진평과 같은 지혜와 계략을 가지고 그와 같은 일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 훗날 [[오호십육국 시대]] 전진의 군주인 [[부견]]이 진평에 대해 호평한 적이 있다. 평소 그는 능력을 중시했으며, 재위 초기에 신하들과 함께 [[한고조]]의 무덤인 패릉을 유람하던 중, 신하들에게 "유방의 일등공신이 누구인가?"라고 묻자, 신하들은 [[소하]]와 [[조참]]을 꼽았다. 그러자 부견은 진평이 비록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으나 그 또한 소하와 조참 못지않은 공이 있다며 치켜세웠다.[* 진평은 소하나 조참과는 달리, 대놓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서 두 사람에 비하면 세간의 평가는 낮았으나 그 능력 만큼은 모두가 인정하는 뛰어난 모사였다. 부견은 이런 발언을 통해 자신이 철저하게 능력을 위주로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뜻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려 한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