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징저우시 (문단 편집) == 역사 == || [[파일:형주성 중국.png|width=80%]] || || 중국에서 가장 잘 남아있는 고성들 중 하나인 형주고성 || 약 6,000년전 이 곳에는 [[신석기시대]] 문화였던 다시 문화(大溪文化)가 일어난 곳으로 추정되며, [[춘추전국시대]]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의 수도 영(郢)이 이 징저우에 위치 해 있었다. 후한말 삼국시대에 [[적벽대전]]과 [[형주공방전]]이 바로 이 징저우시 일대에서 일어났다. 적벽대전 이후 형주가 북형주와 남형주 둘로 갈려 북형주는 위가 남형주는 촉→ 촉오 분할→ 오 순으로 주인이 바뀌었는데 남형주의 중심지가 남군 강릉현 즉 현재의 징저우다. 북형주는 샹양(양양)이 중심지였다. 과거 '''[[강릉]]'''의 흔적은 현재 '징저우 고성'으로 시내에 남아있다. 길이 9km의 성곽은 [[관우]]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며 청대인 17세기 말에 보강되었다. [[삼국지]]를 관광 마케팅으로 미는 도시인데 삼국공원이 있고 [[유관장]] 삼형제의 석상이 서 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강릉 일대의 역사를 느끼고 싶다면 고대 미라가 전시되어 있기도 한 징저우 박물관을 추천한다. 징저우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장링현 (강릉)이 있는데 과거의 강릉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불분명하다. 이후 [[남북조]] 시대 [[후량(남북조시대)|후량]]의 수도였고 당나라 때에 남도(南都)로 불렸으며 [[5대 10국]] 시대 [[형남]]의 수도로 번창하기도 하였다. [[청일전쟁]] 이후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해 외세에 개방된 도시 중 하나였으며, [[중일전쟁]] 때에는 [[일본군]]에게 점령되기도 하였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시기에 들어서서 사스, 장링, 징저우를 합쳐서 징스시(荊沙市)를 만들었다가 [[1996년]]에 현 명칭으로 굳어진다. 징저우의 관할구인 인구 60만의 샤스(沙市)는 고대 초나라 시기에 수도 영의 내륙 항구로 건설되었는데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개항되었으며 1994년에 징저우에 시할구로 합병되었다. 비록 흡수되었지만 그 이름은 징저우 시내 동쪽에 있는 사스 공항(沙市机场)에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