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차민수 (문단 편집) == 포커게이머로서의 행적 == 차민수의 경력에 대한 여러 말들이 오고간적이 있는데 일단 '''대회 기록상으로는''' 세간에 알려진 정도로 엄청난 프로갬블러는 아니다. 다만 차민수의 포커 커리어는 토너먼트 게임보다는 캐시 게임에 집중되어 있다. 차민수 본인도 자신이 토너먼트 게임보다는 캐쉬게임을 훨씬 많이 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포커에 손을 대게 된 계기가 돈을 벌기 위함이었기에 당시 크지 않은 [[상금]]을 위한 대회도전보다는 당장 거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캐쉬게임을 선택했다고.[* 특히 토너먼트는 대회 열리는 곳까지 일일이 찾아가서 정해진 시간에 게임을 해야되는데다 운이 없어서 이기고 있는 상황을 한번만 넘어가도 탈락하고 그대로 끝날 수 있는 것과 달리 캐쉬게임은 넘어가서 올인되어도 리바인하면 그만이라 특히 그렇다] 그러므로 대회기록을 통해 차민수의 포커 경력이나 [[실력]]을 따진다는 것은 어느정도 한계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어쨌거나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으니 저평가당하는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캐시 게임에서의 위상은 분명한데, 현존하는 역대 수위권의 포커 레전드 필 헬뮤스가 2017년 2월 자신의 [[트위터]]에 차민수와 찍은 사진과 함께 그를 '''케쉬게임 레전드'''라 부르고 별명 Mr. Twice의 본래 뜻인 Jimmy Jimmy를 언급한 바 있다. >With '''cash game legend''' "Jimmy Jimmy!" Jimmy Cha was '''one of the best''' cash game players in the world in 1980's/1990's >---- >[[https://twitter.com/phil_hellmuth/status/830741857088860160|#]] 단순히 이런 문구 하나가 절대적 큰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차민수가 정말 실력도 없으면서 거짓말을 치던 것이 아니라 현역이던 80년대의 위대한 선수가 인지하고 인정할만큼 유명한 포커선수였단 것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도박성이 많은 게임바닥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포커게임바닥도 경력을 부풀려서 애기해서 경력들을 프로모션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력이 검증된 [[프로]]들은 그런 경우들을 대단히 싫어하고 또 실력을 검증하려고 노력한다. 즉, 진정한 꾼은 다른 진정한 꾼을 알아본다 말이다. 현존하는 토너먼트 포커 레전드중 10손가락에 꼽히는 필 헬무트, WSOP main event 도 우승해보고 또 WSOP 내 토너먼트들을 가장 많이 [[우승]]해본 경력의 소유자인 선수가 괜히 실력도 없는 사람을 우대해주려고 one of the best라는 표현까지 써주면서 우대해줄 리는 없다. 또한 세계에서 인정하는 토너먼트들을 여러 번 우승하고 세계랭킹 6위까지 올라가 보고 [[1999년]]도에는 월드 포커상금랭킹 2위까지 올라본 한국계 선수 중 가장 유명한 토너먼트 포커 게임 선수 케빈 송도 차민수의 대한 포커 실력 질문이 나올때마다 실력을 높게 쳐주고 차민수를 존경한다고 표현했다. 결론은 차민수는 거의 완전한 캐쉬게임 플레이어였으며 캐쉬게임 특성상 기록은 거의 남지 않기 때문에 현재 차민수의 커리어가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가 대단한 플레이어였다는건 사실이며 1980~1990년대를 풍미한 '''정상급 플레이어'''였다. 그러나 [[토너먼트]]로는 그러지 못(혹은 토너먼트가 본인이 하는 캐시게임보다 상금이 작아서 굳이 많이 참여를 안)했고,[* 당시 테이블에 6~7명이서 게임하면 탑급 레귤러 4~5명에 재벌 레크플레이어 2명정도가 앉았는데 자신을 포함한 탑급 레귤러들이 평균적으로 '''하루에''' 5~10만달러씩 이겼다고 한다. 이 금액은 2020년대 기준으로도 어마무시한 수익인데 당연히 당시 쥐꼬리만한 토너먼트 상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듯.]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캐쉬게임 레전드라고 하면 대중들이 이해를 못하니, 적당히 포커 챔피언 이런 식으로 소개를 하다보니 막상 기록만 봤을때는 토너먼트 기록은 별로 대단한 게 없어서 저평가된 편이 강하다. 실제로 대회 기록의 경우, PorkerDB[* 공교롭게도 아래 서술해 놓았지만 반대로 이 곳 랭크에선 순위밖으로 밀려나있다.] 사이트를 보면 Amarillo Slim's Superbowl of Poker, Los Angeles 리미트 홀덤 대회[* 이 대회는 네임드 대회가 아니다. 게다가 SBOP 메인대회에서 입상한 적은 없으며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다만 과거 wsop 다음 권위가는 큰 대회기는 했다.]를 우승하여 4만 달러, 한화로 3천2백만 원을 획득한 경력 정도가 있다.[* 당시 96년이었으므로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몇 배는 커졌다.] 월드 포커 클래식에서도 5만 달러를 획득하여 3등을 차지했지만 WSOP나 WPT같은 대회에서는 뚜렷한 활약을 펼친 적은 없다. WSOP의 성적은 좋지만은 않다만 나쁜 성적도 아니다. 여러번 출전해서 33회('''13위'''), 34회('''8위-5위-7위-27위'''), 37회('''24위-38위''')를 하였다. 참고로 대회 참가자는 평균적으로 200명이니 상당한 상위권이다. 하지만 세계랭커라고 하긴 뭐한 것이, 일반적으로 WSOP라 하면 메인이벤트, 즉 입장금 $10,000에 상금만 $8M 이상 하는 메인이벤트를 일컫는데, 메인이벤트서 '''입상한 경력은 없다.''' 그리고, PokerDB에 따르면 미국 내 랭킹이 '''2천위 밖'''이며, 세계로 따지면 '''4천위'''에 육박한다. 토너먼트 상금이 $320K, 대략 3억2천만 원 정도 된다고 하면 그리 독보적인 경력이라 할 순 없다. 참고로 한국의 상금순위는 전체 53위다. 이마저도 아주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중.[* 한국인 프로, 세미프로 포커플레이어가 늘어난 것이 그 이유이다.] 다만 여기에도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는데, 첫 번째로 당시 포커씬의 경우 토너먼트 상금풀이 지금처럼 크지 않아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활동하던 무대는 아니었다. 애초에 포커 자체가 2003년 wsop에서 [[아마추어]] 플레이어인 Chris Moneymaker이 우승하기 전까지는 아마추어는 별로 없고 [[프로]] 선수들 위주로 돌아가는 크지도, 대중적이지도 않은 마이너한 종목이였다. 현재도 절대 다수의 [[포커]] 플레이어들은 토너먼트 포커와 캐시 포커를 전혀 다른 게임이라 여기고 접근하고 있으며, 당장에 유튜브 동영상 몇 개만 보더라도 최고의 토너 플레이어들이 캐쉬 게임에서 죽을 쑤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WSOP내에서 12개의 이벤트에서, 역대 최다, 우승한 필 헬무스가 있다.] 두 번째로는 지금은 가장 권위있는 대회가 WSOP, WPT, EPT등이 있지만 당시에는 WSOP 다음의 권위를 가지는 투어는 앞서 이야기한 SBOP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토너먼트 플레이어로 여겨지며 WSOP main event에서 3번 우승한 스튜어트 에럴 엉거(Stuart Errol Ungar)의 경우에도 최고로 인정받는 이유들 중 하나가 SBOP main event 3회 우승이다.[* 물론 차민수의 경우 main event가 아니었고 관련 기록도 없기에 때문에 의미가 없다.] 당시에도 WSOP main event의 우승자에 한해 그 해의 월드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하나의 명예에 가까웠고 이 타이틀 만으로 플레이어의 실력을 판단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이 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자였으며 현재 살아있는 레전드, 포커의 대부라 불리는 '''도일 브런슨'''의 경우 가장 위대한 플레이어로 '''데이비드 칩 리스'''를 항상 1순위로 꼽는다. 하지만 칩 리스는 WSOP내 3개의 이벤트를 우승했으나 main event에서는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브론스외의 다른 수많은 최고의 플레이어, 심지어는 차민수조차 칩 리즈를 세계 포커 게임 지존이며 역대 최고의 실력으로 평가한다. 현존하는 최강의 포커 플레이어라 여겨지는 '''필 아이비''' 역시 칩 리즈를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은 바 있는데, 재밌는 것은 필 아이비 자신 역시 월드 포커 메인 이벤트 우승은 단 한번도 없지만 수많은 포커 토너먼트 우승자들은 필 아이비를 현존 세계최강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차민수는 [[대회]] 수상 실적은 많지 않지만 캐쉬게임 등 각종 비공식전에서 거둔 대단한 전적으로 당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진, 충분히 실력을 인정받는 [[플레이어]]였다. 이 때문에 한국 역사상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중 하나로, 그리고 한국 포커의 개척자로 널리 인정받는다. 이런 명성 때문에 과거 [[신정환]]의 도박 관련 논란이 있었을 때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http://www.cyberoro.com/news/news_view.oro?div_no=11&num=514410|인터뷰]] 다만 차민수가 활동하던 시기는 노리밋홀덤이 아닌 베팅에 몇몇 제한이 있는 리밋홀덤이 큰 게임으로 돌던 시절이라 2020년대 홀덤하면 노리밋인 현재와 달리 그는 리밋홀덤 위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홀덤 플레이어로써 활동이 줄은 2천년대부터 [[온라인]] 포커의 공급이 늘면서 선수들의 실력이 급속도로 늘었고[* 어느정도냐면 10~15년전 정상급 프로선수들의 영상을 보면 현재로써는 중수 정도의 플레이어가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이상하거나 나쁜 플레이가 꽤나 보일 정도이다. 예를 들면 오픈림프 같은.] 나이도 [[전성기]]를 한창 지났을 나이이기에 현재도 그가 지금도 한국 내에서 정상급의 실력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나마 최근에는 포커 [[고수]]들을 초빙하여 진행된 포커 신들의 전쟁 인비테이셔널이라는 대회에서, 패자부활전의 와일드 카드로서 참가하기도 했다. [[https://youtu.be/K7C2rrOqvE8?t=1360|#]] 승리하여 결승 진출 자격을 얻긴 했지만, 일정과 겹쳐 실제로 결승전에 참가하지는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