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차인표 (문단 편집) == 생애 == 집안에서는 기업인이었던 아버지[* 우성해운 차수웅 명예 회장이다.]의 가업을 잇길 바랐던 반면, 본인은 배우의 꿈을 꾸고 있었다.[* 3남 1녀 중 둘째가 차인표인데, 형, 남동생, 여동생도 전부 아버지의 제안을 거부했었다. 모두 자신들의 길은 따로 있다고 했다고 한다.] 1993년 [[MBC]] 공채 22기([[심은하]] 등이 입사 동기)로 합격, 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초창기에는 이름 때문에 당대 유명했던 [[아나운서]] 차인태와 헷갈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엑스트라급 역할을 몇 개 맡다가 1994년에 베스트극장의 '하얀 여로'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가[* 참고로 차인표 - 신애라 부부는 자식이 셋 있는데, 딸 두 명이 입양한 아이들이다.] 주한미군으로 온 청년이 자신의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탈영하는 내용인 드라마에서 차인표는 한국어 하나도 못하는 입양아 역을 능숙한 영어 발음으로 소화하며 당시 베스트극장을 본 사람들에게 상당한 인상을 남겼다. 첫 주연을 맡은 그 해, 첫 연속극 주연을 맡은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단숨에 최고스타로 떠오른다. 쌩 신인이었지만 압도적인 잘생김으로 한순간에 탑스타의 위치까지 올라간다. 당시 이 드라마로 인한 차인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어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각종 연예프로그램 및 스포츠신문 등에 대서특필되고 20대에 이미 이혼남이라는 사실이 알려짐에도 인기에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이 당시 아직 보수적인 사회분위기를 보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차인표가 당시 미군들도 자주 찾던 이태원의 유서깊은 재즈클럽인 (구)올댓재즈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https://www.youtube.com/watch?v=JxKmdeNi8zA|장면]] 은 대한민국 드라마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그가 나중에 인터뷰에서 후술한 바와 같이 해당장면에서 색소폰 리드를 거꾸로 문 것을 나중에 알게되었다고 했지만 전문 연주자가 아니니 이해해주자)으로 이 장면 하나 때문에 94년 그 무더운 한여름에도 가죽잠바, 오토바이가 높은 판매고를 올렸으며 특히 '''[[색소폰]]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팔렸다.''' 이 장면에 현재는 드러머이자 방송인으로 유명한 남궁연이 카메오(무려 머리카락이 있는 세련된 재즈 드럼 연주자로 나온다)로 출연하기도 했다. 인기의 이유는 잘생긴 얼굴과 근육질 몸매에 적당히 좋은 목소리, 당시 소수였던 해외파에 대한 막연한 환상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거기에 드라마 캐릭터는 부잣집 이사님이고, 오토바이를 타면서 남성미를 발산하며, 또 색소폰 연주까지 하는 감미로움을 갖춘 그야말로 환상의 인물이었다. 지금은 저런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스타가 바로 되는 시대가 아니라서 말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하루 아침에 대스타가 된 남자'라 할 수 있다.'''[* 첫 방송이 나가고부터 바로 전국에서 반응이 온 경우는 매우 드물고, 인터넷과 케이블 방송, 성형, 몸짱, 해외파가 흔해진 지금은 이런 식의 스타 탄생은 안 나온다.] 근육질 상체를 자주 노출시킨 원조 몸짱으로 대한민국에서 남성의 몸을 최초로 상업화 시켰다.[* 지금은 체계화된 운동으로 남자 주연급이면 작품 들어가기 전에 준비할만한 수준으로 보이겠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당시 연말의 각종 신문에서 꼽은 올해의 10대 사건 등지에 "차인표 신드롬"이 당당히 순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주역 커플로 연기했던 선배 [[신애라]]와 결국 부부로 맺어지게 된다. 그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신혼 초기 신애라가 당시 연예인들처럼 나이트도 자주 가고 다른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전화 부스 안에서 눈물로 호소하면서까지 막았다고 한다. 결국 이 두 부부는 잉꼬부부로 남아 연예계에서도 유명하다. 신애라가 말하길 당시 연예인으로서 활동하면서 어쩔 수 없던 것을 차인표가 연예계 생활에 피해를 볼 각오를 하면서까지 직접 나서 막아내는 걸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연예계는 얼마나 답이 없었던가... 차인표가 신애라를 끝까지 지킨 이유가 신애라의 이런 속갚은 마음씨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당시 이혼 경력[* 미국 체류 시 6개월 간의 짧은 기간 동안 결혼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이혼남이 아닌 총각이었다.]이 있던 차인표와 신애라의 결합을 두고 구설수에 올리던 사람도 있었지만 이후 차인표의 미담 행보를 보면서 신애라가 남자 보는 눈이 있다며 칭송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 다음 [[아들의 여자]]에 출연,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데 한몫했는데, 촬영 도중 입영할 상황이 되자 연기도 안 하고 바로 입영,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때문에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아예 바뀌어버리는(차인표→정보석)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고의 인기 스타가 입대하자 국방부는 기회를 놓치기 싫었는지, 차인표를 중심으로 해서 당시 현역에 있던 남자 연예인들을 끌어모아 국방부 홍보 드라마 격인 '남자만들기'[* 육군훈련소를 배경으로 촬영했으며, 훈련병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당시 같이 국방홍보원에서 복무하던 [[감우성]], [[이휘재]], [[구본승]]과 훈련소 입소동기로 출연했다. 이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냉혈한 훈련부사관 역할은 [[김세준]]이 맡았다.]를 촬영했고, 이 드라마 역시 인기를 끌었다. 그리하여 여전히 군 복무중인 상태에서 [[신고합니다]][* 전술한 남자만들기가 너무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의 드라마여서 신고합니다는 조금 더 가볍고 재미있게 구성을 했다.]라는 군대 드라마를 한편 더 찍었다. 그 외에도 군 복무 중 [[조창호]] 소위의 북한 탈출기를 각색한 영화 [[알바트로스(영화)|알바트로스]]에도 출연했다. 군 제대 직후 사랑을 그대 품안에 후속 격인 [[별은 내 가슴에]]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군 전역 징크스 + 유부남 + 당시로서 고령 + 매력 없는 캐릭터 등의 악조합으로 드라마 도중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안재욱에게 주연을 반납하고 존재감 없는 서브남주로 내려앉았다. 드라마 방영 도중 인기에 따라 남주와 서브남주가 바뀐 최초의 사례이다. 청춘스타로서의 생명력이 여기에서 끝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를 계기로 자신이 더 이상 청춘스타가 아님을 깨달아 이후에 출연한 '영웅반란'부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영웅반란은 드라마 자체가 실패하여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대 그리고 나'부터 서서히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시작했고, 2000년에 방영한 SBS수목드라마 '불꽃'에서 차도남 이미지를 선보여 비록 시청률은 조금 부진했지만 다시 한번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2001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 남자 연기상과 대상을 수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