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가학회 (문단 편집) ==== 친한/혐한 논란을 둘러싼 각계의 반응 ==== 과거 [[SBS]]에서 이 종교에 대한 르포([[그것이 알고 싶다]])가 있었는데, 표면적으로 이케다 명예회장이나 당 종교의 대한(對韓)감정이 친한이라고는 하지만, [[2차대전]] 때 알려진 이케다의 신사참배 거부 동기의 진실 등을 캐냄으로써 '사실은 그다지 친한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도리어 일본 본토의 [[혐한]]층에서는 창가학회의 친한정책이나, 민주당이나 재일교포 단체 등과의 연관성 등 [[음모론]]에 가까운 논거를 들어서 대표적인 친한단체라고 까고 있다. 이에는 창가학회가 [[일본어]] 출판물에서 日韓대신 韓日을 써왔으며, 또 한국 내에서 반일집회를 주최한 사실이 몇 차례 발각된 데에 기인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내의 SGI까들은 이케다 명예회장도 한국계라는 설을 퍼트리는데, 지들 맘에 안들면 일단 재일드립부터 치고 보는게 혐한이라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의 본명도, 지대작(池大作)이라는 설과 성대작(成大作)이라는 설이 있으며, 지대작이라는 설에 따르면 [[목포]] 출신의 승려라고 한다.[* [[목포]]는 [[불교]] 일련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지역이고, 일본인 일련종 교도의 출입이 꽤 있는 편이다.] 그리고 부인 이케다 카네코(池田香峯子)가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2004년도에 세이쿄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조차도 가족이 모두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은 게 남아있는 것처럼 한복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한국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한일 양국의 반대파들은 창가학회가 '''서로 자기 편이 아니라고 하는 형국'''이다. 다만 이케다 명예회장은 공개적으로 한국을 긍정하는 발언을 많이 하긴 했다. 강연과 대화에서 [[유관순]]과 [[안창호]]의 훌륭함을 강의하고 한국을 '문화 대은인의 나라', '형님의 나라'로 공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를 일한(日韓)이 아닌 한일(韓日)로 표현하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한국>이라는 서적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케다 명예회장은 그 자신이 유년기 전쟁을 겪은 세대이고 또 그로 인해 형제를 잃은 경험도 있으니 이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독립유공자]]협회에서는 특별현창을 수여하고[* 창가학회의 초대 회장인 마키구치 쓰네사브로는 [[군국주의]]에 항거해서 옥사했다. 죄목은 당시 독립투사들이 받은 죄명과 같은 불경죄, 치안유지법 위반.], 2009년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화관문화 훈장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연합뉴스 2009년 11월 18일 기사.] [[독립유공자]]협회에서 현창을 수여한 것을 보면, 최소한 역사 인식에서는 과거 일제의 부정적인 역사를 청산하려는 양심적인 일본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본토의 '혐한'층이 창가학회를 싫어하는 이유는 초대회장 때부터 창가학회가 [[군국주의]]에 대놓고 항거했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 발발 당시 [[일본 정부]]는 모든 종교들을 '[[천황]] 중심' [[신토]]로 통일하기 위해 종교단체에 압박을 가했는데, 이 때 당시 군부의 압박이 가해진 일본 전역 1,500여개 종교단체 중 반대한 종파는 불과 5곳에 불과했다. 그 중 간부가 체포된 곳은 총 3곳이었고 2곳은 취조 후 [[신토]]로 전향하여 풀려난데 반해, 군국주의에 반대하다 교주가 사망하고 조직이 붕괴된 곳은 창가학회뿐이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엔 [[오모토]] 탄압사건이 훨씬 유명해서 이 사건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이때 오모토나 창가학회 말고도 [[군국주의]]를 거부하다가 [[치안유지법]]에 박살난 신흥종교나 신사가 한두 개가 아니긴 했다. 또 군국주의에 항거하다가 [[교주(종교)|교주]]가 사망한 종교는 창가학회뿐이라고는 하지만, 이 당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 당해서 감옥에서 옥사한 신흥종교, 신사 관계자는 제법 많았다. 오모토에서는 교단이 초법적 탄압을 받았으며, 고문의 여파로 3대 교주의 남편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단, 교주 본인이 탄압받아 사망한 경우는 창가학회가 유일하다.''' 그러다보니 창가학회 교세가 급성장하면서 현대 들어 주목받고 있는 것. 2012년 9월 경에는 이케다 명예회장의 저서 <감사합니다 한국>이 도서 베스트셀러 순위 12위에 랭크되기도 하였다.[[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0824&yy=2012|#]] 이 책에서 이케다 명예회장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역사에 끼친 누를 사죄하고 한국을 문화 대은인의 나라라고 부르고 있다. 또 한국 젊은이들이 자신의 역사, 특히 [[한국독립운동|한국의 독립운동]]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는 지배국이었던 일본의 입장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일관계]]가 영 좋지 않은 시기에 일본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이케다 회장의 태도가 한국인에게는 너무나도 낯설었기에 적잖은 충격을 가져왔다. 일본의 인터넷 언론 J-CAST에서 이를 다룬 기사가 나왔다. [[http://isao76.egloos.com/2449996|번역된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