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가학회 (문단 편집) == 법화경 중시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한국 [[불교]]에서는 흔히 [[법화경]](法華經)이라고 줄여부르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가지 언어로 번역되고 관련 문화 유산도 많아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승불교 경전이다. 다른 경전들과 마찬가지로 대략 서기 1세기쯤부터 석존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제자들이 글로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법화경은 총 10권이며, 개경인 무량의경과 결경인 보현보살행법경(普賢菩薩行法經) 각각 1권씩을 제외하면 총 8권 28품(品, 경전에서 장(章)의 구분을 나타내는 말)으로 구성되어 있다.[* 품을 전부 나열하자면, 1서품 / 2방편품 / 3비유품 / 4신해품 / 5약초유품 / 6수기품 / 7화성유품 / 8오백제자수기품 / 9수학무학인기품 / 10법사품 / 11견보탑품 / 12제바달다품 / 13권지품 / 14안락행품 / 15종지용출품 / 16여래수량품 / 17분별공덕품 / 18수희공덕품 / 19법사공덕품 / 20상불경보살품 / 21여래신력품 / 22촉루품 / 23약왕보살본사품 / 24묘음보살품 / 25관세음보살보문품 / 26다라니품 / 27묘장엄왕본사품 / 28보현보살권발품. 1~14품의 전반부를 적문, 15~28품의 후반부를 본문이라고 하여 후반부를 더 중시한다. 2방편품과 16여래수량품은 법화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품이며 각각 적문과 본문의 핵심이다. 나머지는 모두 지엽(枝葉)이다. 법화경 적문과 본문 각각을 서분과 정종분, 유통분으로 나눌 수도 있고 법화경 28품을 셋으로 나눌 수도 있다. 또한 법화경을 정종분으로 하여 개경을 서분, 결경을 유통분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위에서 말한대로 법화경 총 10권을 정종분으로 하여 그 이전의 경전을 서분, 열반경은 유통분으로 할 수도 있다. 이처럼 경전은 부분 속에 전체를 갖추고 전체가 부분이 되기도 하는 프랙탈을 이룬다.] 권의 수와 품의 수는 듣기에 서로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권 수는 법화경 제0이라고 하고 품은 품의 제목을 이야기 한 후 제00이라고 품의 수를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서 법화경 1권에 해당하는 제2품인 방편품의 경우엔 '법화경 제1, 방편품 제2'라고 부른다. 수량품의 경우엔 6권에 있고 제16품이므로 '법화경 제6, 여래수량품 제16'이 된다.] 원어인 [[산스크리트어]]로는 सद्धर्म पुण्डरीक सूत्र (saddharma puṇḍarīka sūtra / 삿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라)[* 단어마다 구분하여 해석하자면 'sad'은 한국어로 '올바른'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한역에서는 정(正, 바르다), 묘(妙 묘하다, 오묘하다) 등으로 번역한다. dharma는 한국어로 법, 법칙을 뜻한다.(달마대사의 달마와 같다.) puṇḍarīka는 한역에서 연화라고 번역되듯이 연꽃을 뜻한다. sūtra는 경(經), 경전을 의미한다.] 정도의 발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한어로 묘법연화경이라고 번역한 사람이 구마라습(鳩摩羅什)이다. 묘법연화경은 200가지가 넘는 한역 법화경 중에서도 최고의 문학성과 가치를 인정받으며 원작의 의미를 더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가 재미있는데, 구마라습은 혼자 혹은 소수의 지식인들끼리 모여 번역한 것이 아니다. 수백 명의 제자들에게 산스크리트어로 된 법화경을 강의하면서 함께 적절한 번역을 토론하여 번역을 진행했다고 한다. 따라서 딱딱하지 않고 대중들의 마음에 더 잘 와닿는 아름다운 비유와 예술성을 살린 것이 일품이다. 예를 들어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는 제목의 '묘(妙)'라는 글자만 하더라도, 원어에서는 '살(바르다)'이라는 글자였으며 이를 다른 번역가들은 정(正, 바르다)이라는 글자로 번역했으나 구마라습은 묘(妙, 묘하다, 불가사의하다)라는 글자로 번역함으로써 정(正)이라는 글자가 가진 갑갑함을 없애면서도 법(法)의 고귀함을 살리고, 또한 불가사의하다는 뜻의 심오함을 내포하여 독자들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구마라습의 번역으로 인해 법화경은 '본전의 내용을 왜곡했을 가능성'과는 별개로 일단 동양에서 대히트를 치는 데에는 성공했다. 따라서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와 일본의 문화유산에 법화경의 사상이 남겨진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불국사]][* 불국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석가탑, 다보탑은 법화경 허공회의식에서 석가불과 다보불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탑으로 형상화한 것이며 전체적인 형상과 구도가 법화경과 매우 밀접하다.] 법화경은 워낙 민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법화경을 신앙하는 사찰은 한국에서도 아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 꽃이라 이 연꽃으로 사찰 주변을 장식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연화가 바로 이 연꽃을 의미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화라는 단어는 법화경을 비유적으로 상징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법화경의 이름이기도 하다. 법화경의 전승에서는 석존이 묘법연화경이 연화라는 꽃과 닮았다고 하여 '연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므로 연화 그 자체가 경전의 이름이다.][* 영어권에서는 법화경을 연꽃을 뜻하는 'Lotus'와 경전을 뜻하는 'Sutra'와 뜻이 결합하여 'The Lotus Sutra'라고 부른다. 번역하면 그냥 연꽃 경전이다.] 부처를 형상화한 그림에서도 부처가 연꽃 위에 앉아있거나 연꽃을 들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석존이 연꽃을 자신의 깨달음을 대변하는 꽃으로 여겨 소중히 했기 때문이다. 창가학회의 교주 니치렌은 법화경을 지극히 중요하게 여겼으며 한어인 묘법연화경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로 된 법화경 원문까지 공부한 듯 하다.[* 그의 어록인 어서에는 법화경의 비유에 등장하는 내용을 한역 묘법연화경과 산스크리트어로 된 법화경을 비교하여 차이를 상세히 묘사하는 글도 남겨져 있다.] 사실, 당시 승려라는 직업은 종교인이기도 했지만 경전을 읽기 위해 중국어나 인도의 언어에도 능통하다보니 상당한 지식인 층에 들었으며 대부분의 승려들이 각종 국가 업무에서 통역사 역할도 수행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법화경만 공부한 것은 아니고 일본 전역의 사찰을 돌며 화엄경, 아함경, 방등경, 반야경, 열반경, 정토삼부경, 대일경, 정명경, 대집경 등 당시 일본 각지에 있는 모든 경전을 젊은 나이에 독파했다. 그뿐만아니라, 용수의 대지도론이나 중국 천태대사 이후의 마하지관, 법화현의 등 주석서까지 방대하게 공부했다.[* 심지어는 한 신자의 어린아이에게 유교의 가르침에 대해 가르치는 글도 있고 논어, 소학, 대학 등의 글도 인용하여 말하는 것으로 보아 불교경전에 한하지 않고 당시의 각종 서적을 폭 넓게 공부한 듯 하다.] 전부 법화경의 서분과 유통분으로서.[*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은 그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마치 지금의 글쓰기가 처음 중간 끝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경전도 각각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이라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당연히 정종분에 해당하는 내용이 그 경전의 가장 중요한 핵심부분이다. 하나의 경전을 서분, 정종분, 유통분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기본적인 구분법이지만 석존의 50여 년 일대성교를 통틀어 보았을 때도 법화경을 정종분으로 본다면 법화경 이전의 가르침을 서분, 법화경 이후를 유통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더욱 일반론적인 의미로 넓혔을 때, 어떤 주장이나 핵심을 정종분이라고 보았을 때 그 밑바탕이 되는 근거나 일체의 지식을 서분으로, 주장의 개별화된 사례나 구체적인 응용이 되는 지식은 유통분이라고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니치렌은 다양한 경전과 주석서들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읽은 것이 아니라 결국 법화경을 객관적으로 남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공부한 것이다.][* 그의 저작을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살펴 보아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출처와 인용을 근본으로 논의를 전개시켜 나가는것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용수, 천친, 남악, 천태, 장안, 묘락, 전교와 같은, 아주 유명한 대논사들의 저서를 권과 장 수까지 정확하게 인용하고 또는 타종인 염불종의 호넨이 쓴 선택집이나 선종, 율종, 진언종, 등의 논사들의 책까지 공부해서 오히려 타종의 교리를 그 종파의 전문승려보다 잘 기억하기도 하며 법론 대결에서 상대방이 헷갈려서 실수로 잘못 인용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은 후 반박하는 글까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창가학회는 [[석가모니]][* 창가학회에서는 '석존'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의 법화경에 따라 모든 민중들이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니, 더 나아가서 사실은 모두 '지용보살(地涌菩薩)'[* 땅(地)에서 솟아(涌) 나타난 보살로 법화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는 부처다. 종지용출품 제15에서 땅에서 솟아올라 나타난 후 촉루품 제22에서 석존의 불법을 의탁받아 말법에 넓히기로 약속하고 다시 땅으로 들어간다. 그 경지는 오히려 석존보다 높다고 묘사될 정도로 심원하지만 겉으로는 부처가 되지 못하여 계속 수행을 하는 보살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처이지만 보살이라고 불린다. 또한 그 숫자가 육만항하사(六萬恒河沙, 겐지스 강 모래알 수의 육만 배.)나 된다고 하고 각각의 지용보살들이 제각각 다시 1명에서 6만항하사의 권속(眷屬, 식구)을 데리고 다닌다. 법화경 신앙하는 불교종파는 많이 있지만 이 지용보살을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이라고 파악하고 행동하는 단체는 니치렌 불법이 유일하다.]이라는 부처인데 겉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성불의 원리를 설명할 때 고생을 거듭하는 수행을 통해 중생이었던 자신이 부처로 바뀐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감추어져 있는 부처의 생명을 열어서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행복의 원리를 설명할 때도 자신의 행복을 부처에게 대신 가져다 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가능성을 열어 자기가 쟁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전자와 같은 '기복신앙(祈福信仰, 행복을 자기가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가져다주기를 기다리는 신앙)'을 '일흉(一凶)'이라고 말하며 엄금한다. 이와 같은 법화경 철학과 교리를 가진 탓에 창가학회는 모두가 신앙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신앙생활과 함께 자신의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을 중시하고 서로 격려한다. 창가학회의 교주 니치렌은 법화경의 제목을 따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독송하는 창제행(唱題行)[* 니치렌은 세친과 [[나가르주나|용수]] 등도 창제를 했으나, 혼자서만 하는 선에서 그칠 뿐 널리 가르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성[* 부처가 갖고 있는 성품이나 성질을 뜻한다.]을 몸에 나타내어 이번 생애에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경우는 [[한국]]에도 존재하는데 바로 [[삼국시대]]의 [[나무아미타불]]이 그것. 지금도 이 말은 한국 화엄종의 대표 문구이며 화엄종을 수용한 조계종 역시 이것을 주로 쓰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나무아미타불의 뜻은 [[아미타불]]이라는 부처를 믿고 따른다는 뜻으로 이것만 외면 다음 생에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깨끗한 땅이라는 뜻으로, [[극락]]과 같은 말이다.)에서 왕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이를 대중화한 것이 [[원효]], 근본이 되는 경전은 정토삼부경이다. [[밀교]] 계통에도 흔한 일이라 [[티벳 불교]]에서 "[[옴 마니 반메 훔]]"을 무수히 독창하는 것도 같은 취지다.] [[일본어]]에 따라 읽으면 "남묘호렌게쿄"가 된다. 창가학회는 이 남묘호렌게쿄를 신앙하는 단체이므로, 니치렌의 저술을 모아 정리한 '어서(御書)'를 법화경보다 훨씬 더 많이 인용하며, 이를 공부한다. 니치렌은 그 누구보다도 법화경을 소중히하고 깊이 공부했기에 이 니치렌의 저술인 어서는 법화경의 해석과 인용이 주이며, 경전의 원문을 중시하여 어서공부는 그대로 법화경 공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화경은 방대하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다 독송하는 경우는 드물며, 주로 2방편품과 16여래수량품만을 일본어로 독송한다.[* 이는 창가학회의 왜색 논란과 관련해서 자주 지적되는 요소이다. 창가학회에서는 대외적으로 '니치렌 대성인이 일본어로 독송했기에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창가학회의 교세 확장 역사를 되짚어 보면 외국인 신자들이 영험을 보기 위해서 일본어로 독송하던 습관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보는 쪽이 좀더 사실에 부합한다.] 이를 근행(勤行, 곤교)이라고 한다. 이 두 품 중에서도 2방편품의 십여시, 16여래수량품의 자아게는 특히 중요하게 다뤄지며 상세한 해설이 따라붙는다. 근행은 방편품-종 울림-자아게-종 울림-제목-종 울림-제목삼창-어본존에 보은감사-제목삼창-삼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도다 조세이, 이케다 다이사쿠.]에 대한 보은감사-제목삼창-세계 광선유포 기원문과 회향-회향 중 종 울림-제목삼창-광선유포 기원문 마무리-제목삼창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그 외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구절로는 20상불경보살품의 24자 구절이 있으며,[* "나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하여 감히 가볍게 여기거나 업신여기지 않는다. 그 까닭은, 그대들이 다 보살의 도를 행하여 마땅히 성불할 것이기 때문이다.(我 深敬汝等 不敢輕慢 所以者何 汝等 皆行菩薩道 當得作佛)"] 이를 학회 내부에서는 "24문자의 법화경"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가학회의 교주가 석존이고 니치렌은 법화경을 공부한 일개 승려일 뿐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니치렌은 법화경을 비롯한 모든 경전을 섭렵한 후에 석존의 불법이 힘을 잃게 되는 말법(末法)에는 기성불교를 깊이 믿을수록 오히려 불행이 깊어진다고 통찰했다. 법화경에서는 석존 멸후 인간들의 성격이 더러워지는 말법시대에 다시 태어나 새로운 불법을 넓힐 것을 석존에게 약속하는 '지용보살(地涌菩薩)'이 출현하는데 니치렌은 법화경을 읽고 자신이 지용보살로서 법화경에 비침된 '남묘호렌게쿄'라는 법을 넓힐 사명이 있음을 자각했다. 그래서 만으로 서른 한 살이었던 1253년 음력 4월 28일 정오의 시각에 세이초사라고 하는 당시 일본 최고의 사찰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를 입종선언(立宗宣言)이라고 하여 니치렌 불법의 시초가 되는 날로 정했다. 말법(末法)[* 석존이 예언한 것으로 석존 멸 후 1000년간을 정법, 그 다음 1000년은 상법, 그 다음의 영겁에 걸친 시간을 말법이라고 정했다. 말법의 시대에는 석존의 영향력이 전부 사라져서 기성불교를 신앙해도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하였다. 이를 통틀어 정상말의 삼시(三時)라고도 한다. '세상이 말세다.'라는 말이 있는데 말세, 말대라는 말 모두 이 말법과 같은 뜻의 불교 용어다. 석존의 입멸년도가 계산 방식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뉘는 탓에 불분명한지라 말법의 시작 또한 다소 불분명하지만 대략 불기 2500쯤에 해당된다고 추정되는 현재는 어떤 계산법으로 계산해도 이미 말법에 접어들어있다고 판단된다. 현재는 말법이 시작한 지 대략 수백 년이 지난 시점이다.]인 지금은 석가모니가 이미 과거불이 되었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가피력에 의탁해보아야 공허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리 때문에 [[대한불교 조계종]] 등에서는 창가학회가 [[석가모니]]를 부정하고 있다며 창가학회를 불교(佛敎)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창가학회는 자신들이 석가모니를 부정한다면 애초에 석존의 가르침인 법화경을 이토록 중시하고[* 니치렌의 어록을 모은 어서를 보면, 니치렌은 석존의 경전인 법화경을 필두로 하여 다양한 경전의 글을 인용하며 철저히 경전 근본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니치렌의 석존의 가르침을 가장 소중히 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석존의 유언으로 알려진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법에 의하되 사람에 의하지 말라. 즉, 사람의 말이라도 경전 등의 근거가 없는 말은 받아들이지 말라.)'을 니치렌 자신이 매우 중시했다는 점을 들어 니치렌의 석가모니 존중양상을 증거하기도 한다.], 남묘호렌게쿄[* 묘법연화경(묘호렌게쿄)에 귀의(나무)한다는 의미.]라고 말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을리 없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석존의 예언이었던 '투쟁견고(鬪爭堅固) · 백법은몰(百法隱沒)'[* 위의 정법, 상법, 말법이라는 시간의 구분에서, 말법의 시대가 도래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서로 다투며, 백법(百法, 바른 가르침)이 은몰(隱沒, 자취를 감춘다)한다'는 뜻이다. '견고'란 부처의 예언은 틀림 없다는 의미다. 이 예언은 대집경(大集經) 제55권에 나온다.][* 창가학회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핵무기의 사용과 냉전시대, 끊임없는 3차대전의 위협, IS의 테러행위 등은 모두 이 말법시대의 양상인 투쟁견고 · 백법은몰이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입정안국(立正安國)을 호소한 교주 니치렌의 주장과 같이, 올바른 사상과 철학과 종교가 세계민중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이 인류의 평화를 위해 인류의 갈등과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에 따르는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자신을 지용보살이라고 자각하여 행동한 창가학회 교주 니치렌처럼, 창가학회 회원 모두가 내증(內證)의 경애[* 境涯, 수행으로 얻은 위치나 상태. 경지, 경계와 비슷한 뜻.]는 지용보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묘호렌게쿄라는 말법의 법화경을 믿고 실천하여 타인에게도 알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한 마디로 창가학회는 법화경을 중시하되, 니치렌 대선사의 어록인 어서를 근본으로 하여 법화경을 읽는다. 창가학회에서는 이와 같은 니치렌 기준의 법화경 독해를 "문저(文底)에서 읽는다"고 표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