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성군 (문단 편집) == 역사 == [[발해]] 멸망 이후 [[여진족]]의 영토로 남아있다가 [[고려]] [[정종(고려 제10대)|정종]] 대에 [[청천강]] 유역인 대창면 지역에 성을 쌓고 창주방어사(昌州方禦使)를 설치하면서 다시 한민족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창주 일대를 지나는 [[천리장성]]을 쌓으면서 창주는 북방경계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창성에는 전창(田倉), 신창(新倉), 동창(東倉), 대창(大倉) 등 '곳집 창([[倉]])'이 들어간 지명이 많은데 이는 창성에 군수물자를 보관하는 창고가 많았다는 흔적으로 이곳이 군사상 요충지였다는 증거이다.] 이후 [[조선]] [[태종(조선)|태종]] 대에 인근의 이성만호부(泥城萬戶府)를 통폐합해 '창성'이라 하였고 [[세조(조선)|세조]] 대에 압록강 유역으로 읍치를 이전하였다.[* 그래서 [[대동여지도]]에서 창성군 쪽을 보면 '대창'이라고 써있는 곳 인근에 '고읍(古邑)'이라고 써있는 곳이 있다.] 청천강 유역에 읍치가 있다가 압록강 유역으로 읍치가 옮겨갔다는 점에서 옆의 [[삭주군]]과 비슷하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수풍댐]]이 건설되면서 도시 중심부 전역이 수몰되면서 군청을 우면으로 이전하였다. 광복 이후 38선이 그어지면서 [[북한]]의 땅이 되었다. 북한은 1952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창성군의 동남부에 해당하는 동창면, 대창면, 청산면, 신창면(4개 리) 지역을 분리하여 [[동창군]]을 신설하였다. [[김정은]] 일가가 중요시하여 뻔질나게 드나드는 지역이다. 6.25 전쟁 도중 김일성이 머무르기도 했었고, 압록강변에는 김씨 일가의 전용 별장인 '창성 특각'이 있는데, 중국 국경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123호' '은폐도로'라고 하여 유사시 중국으로 도주할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다.[[http://www.rfa.org/korean/in_focus/nk_nuclear_talks/secreatroad-07032014133910.html|#]][[https://www.yna.co.kr/view/AKR2017053012840001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