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창씨개명 (문단 편집) === 강요 차원 === * [[류큐 왕국]]은 1522년에 [[아마미 군도]]를 병합한 후 아마미 군도의 [[야마토 민족]]계 토착민들을 [[류큐인]]에 동화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야마토식 이름을 버리고 류큐식 이름을 쓰도록 강요하였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오늘날 아마미 군도 주민들은 정체성은 야마토 민족이지만 언어, 문화적으로는 류큐 왕국의 지배에 따른 흔적이 적지 않게 남아있는 복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임진왜란]] 직후에 [[명나라]]의 장군인 [[모문룡]]이 [[조선]]을 상대로 [[해적]]질을 일삼아서, 이것이 외교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결국 이에 대해 조선이 명나라 측에 항의하는 지경에 이른 바람에 같은 명나라 장군인 [[원숭환]]이 그를 체포해서 처형해버리고, 뒤이어 조선군이 모문룡의 본거지인 [[평안북도]] [[철산군]] [[가도]]를 점령하자 조선 조정에서 가도의 주민들과 그의 부하들을 포함해서 거기에 남아있던 [[한족]]들에게 몽땅 [[한복|조선식 의복]]과 [[상투]]를 강요하고 [[중국]]식 성명을 전부 조선식으로 고쳐버렸다. *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남유다 왕국의 유민들도 창씨개명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구약성경 [[다니엘서]]의 주역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바빌론식 이름을 갖고 있었다. 에스델서의 [[에스델]]과 [[https://ko.m.wikipedia.org/wiki/%EB%AA%A8%EB%A5%B4%EB%93%9C%EA%B0%9C| [[모데카이|모르드개]]]] 역시 히브리식 이름은 아니며 각각 [[이슈타르]]와 [[마르두크]]에서 따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 [[베트남]]은 [[참파]]와 [[캄보디아]]를 정복했을 때 두 민족에게 베트남식 성씨와 이름([[한자]]) 사용을 강요할 뿐 아니라 다른 동화 정책과 문화 말살 정책도 펼쳤는데 참파의 경우 '''[[이슬람]]과 [[힌두교]]를 믿던 참족에게 종교별로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강요했고'''[* 다 알다시피 이슬람교에서 돼지는 기피의 대상, 힌두교에서 소는 신성한 존재다.] 힌두,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베트남인들이 믿는 [[대승 불교]] 사찰을 지었다. [[캄보디아]]를 잠깐 합병했을 때는 합병 1년 만에 창씨개명, 풍습개조, 지명개명, 직할화, 캄보디아 왕족과 관리들에게 베트남식 [[단령]] 착용 강요 등을 시행하는 동시에 남부 베트남의 크메르족 마을의 경우 베트남인 촌락으로 크메르족 촌락을 포위하고 강제 통혼 혼혈을 시켜가면서까지 동화시키려고 하였다. 오늘날 베트남 남부 지역 주민들은 베트남화된 참족과 크메르족의 후손이라서 그런지 베트남 북부 지역 주민들과 달리 전형적인 동남아시아인의 스테레오타입(황인과 [[네그리토]]의 [[혼혈]])이 드러나는 편이다. * [[프랑스]]는 19세기에 [[알제리]]에 프랑스식 이름을 강요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식 적극적 동화정책의 일환이었는데 반발이 너무 심해서 손해가 크자 1900년대부터 방침을 바꿔 연합주의로 전환했다. * 위에도 적혀 있지만 [[대만 섬|대만]]이 일본 식민지였을 때 비슷하게 폐성창씨가 이뤄졌다. 예를 들면 위의 창씨개명한 사람 목록에 나와 있듯이 [[리덩후이]](李登輝)는 일제강점기에 이와사토 마사오(岩里政男)라는 성명을 썼었다. 한국 성씨를 남긴 조선과는 대조적으로 대만은 호적에서 중국 성씨를 아주 없앴다. 하지만 애초에 대만에선 그다지 열심히 개성명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허가제를 두어 일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을 엄격히 했다. 허가 기준은 [[일본어]]에 능통하고 [[천황]]을 제대로 모셨는지()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1944년까지도 대만의 폐성창씨 비율은 전 대만인의 2%에 해당하는 7만 명에 지나지 않았다. *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 독일]]은 [[룩셈부르크]] 대공국을 점령하고 아예 독일의 일부로 합병했을 뿐더러 룩셈부르크의 [[프랑스어]] 사용을 전면 금지했으며 [[프랑스]]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독일]]식 이름으로 이름을 고칠 것을 강요했다. 현대 [[룩셈부르크인]]들 중에서도 룩셈부르크 북부 지역 사람들은 독일어가 모어이고 독일식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 이탈리아 파시스트당 역시 [[트리에스테]] 지역을 차지하면서 그 지역에 살던 슬로베니아인들에게 이탈리아식 이름으로 개명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성씨가 바로 [[AC 밀란]]에서 2대 째 전설을 이어오고 있는 말디니 가문([[체사레 말디니]] - [[파올로 말디니]])이다. 본래는 성이 믈라디치(Mladic)였다고 한다. *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집권 후 신질서(Orde Baru)시기에 [[화교]]들에게 중국식 성씨를 강제로 고쳐서 인도네시아식으로 만들 것을 강요하는 법령을 발표도 했다. 이 때문에 현재 인니의 중국계 대다수는 성씨가 다음절이다. 만약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등 다른 나라의 중국계 주민들 중에 인도네시아식 다음절 성씨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100% 인도네시아 화교 혈통이다. * 1980년대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에서는 '재생과정(Възродителен процес)'이라는 정책으로 튀르키예계 주민들의 튀르키예풍 성씨를 슬라브식 성씨로 고치게 했다.[* 가령 유명한 역도 선수 나임 [[쉴레이만|술레이마노프]](Наим Сюлейманов)는 나움 샬라마노프(Наум Шаламанов)로 변경되었다. 튀르키예로 탈출하고 나서 이름을 나임 쉴레이마놀루(Naim Süleymanoğlu)로 바꿨다. 해당 인물은 2017년 11월 사망.] 이에 대한 반발로 1989년 국경이 개방되자 30만 가량의 튀르키예계 불가리아인이 튀르키예로 이주하였다.[* 혈통상 불가리아계였지만 조상이 [[오스만 제국]] 시절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대대로 무슬림으로 살아가게 된 포마크인 또한 독립국가 불가리아의 무슬림 탄압을 피해 튀르키예계와 함께 지금의 튀르키예 땅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그대로 불가리아에 남은 튀르키예계 불가리아인도 적지 않으며 특히 아랫동네인 [[그리스]][[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의 경우]]처럼 터키어를 쓰고 튀르키예계 정체성을 가졌으면서도 종교는 [[정교회]]인 이들이나 아예 무신론자라서 불가리아 공산당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았던 이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키예계 불가리아인들에 비해 차별을 덜 받았기 때문에 튀르키예로 이주하지 않고 그대로 불가리아에 남는 경향이 더더욱 강했다. 튀르키예로 이주한 튀르키예계 불가리아인의 후손들이 튀르키예식 성씨를 쓰는 것과 달리, 불가리아에 그대로 남은 튀르키예계 불가리아인의 후손들은 여전히 슬라브식 성씨를 쓰고 있다.[* 공교롭게도 튀르키예인의 가까운 친척뻘 민족인 [[아제르바이잔인]]들 또한 독립국가 아제르바이잔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을 지배했던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영향을 받아 튀르키예식(아제르바이잔식) 이름과 슬라브식 성씨를 쓴다.] 사실 이러한 일은 튀르키예계 불가리아인만 겪은 게 아닌데, 포마크인·[[알바니아인|알바니아계]] 불가리아인·[[그리스인|그리스계]] 무슬림·[[보슈냐크인]]·[[쿠르드족]] 같은 불가리아의 다른 무슬림 민족들도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의 강요에 의해 이슬람식 성씨를 슬라브식으로 변형시킨 경우가 많았다. * 위의 불가리아와 비슷한 사례인데 [[러시아 제국]] 및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무슬림 민족들은 현재까지도 국적이 러시아인지 아닌지를 막론하고 이슬람식 이름을 슬라브식으로 변형시켜 만든 성씨를 쓰고 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이슬람 카리모프]], 라흐몬 나비예프 등이 대표적이다. * [[보슈냐크인]], [[튀르키예인]], [[알바니아인]], [[쿠르드족]] 등 구 [[유고슬라비아]]의 무슬림 민족들 또한 유고슬라비아의 지배에 따른 영향으로 이슬람식 성씨를 슬라브식, 정확히는 [[세르보크로아트어]]권식으로 -비치 돌림 성씨로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민족|소수민족]]도 [[중국 여권|여권]]을 발급받을 때 일종의 창씨개명을 당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소수민족의 이름을 여권에 적을 때는 원음이 아니라 그 이름의 [[표준중국어]] 음차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음이 Rehimjan인 이름은 赖希木江을 거쳐 Laiximujiang으로 변하고 여권에는 REHIMJAN이 아니라 LAIXIMUJIANG이 적힌다. [[중국/민족]] 문서의 [[중국/민족#s-4|여권 발행 시 이름 표기]] 섹션 참고. [[중국공산당]]은 [[위구르족]]들에게 중국식 성씨를 강제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