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채명신 (문단 편집) === 사망 === [[2013년]] [[11월 25일]], 87세 생일을 불과 이틀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보다 50여일 앞선 그해 10월 초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 국방부장이었던 베트남 육군대장 [[보응우옌잡]] 장군이 사망했다.] || [[파일:external/img.ezmember.co.kr/23c789ec419d06c6bfdd23c4e1339e91.jpg|width=100%]] || || 서울 현충원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된 채명신 중장의 묘소[br]묘지번호 [[34489]] || ||[youtube(zt8-EW7XLQ0)]||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묘역에 묻어달라."는 유언[* 이 유언이 상당히 오래된 일이라고 한다.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지내면서 3천여명이 넘는 많은 부하 장병들이 전사했다고 한다. 항상 마음 아파하고 자신만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에 대해서 속상해 했다고 하며, 서울현충원을 찾아 부하 병사들의 묘비를 붙잡고 통곡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거기에 묻혀야 되겠다. 그렇게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고 했다.]에 따라 채명신이 월남 파병 용사들의 추모 행사를 해왔던 [[국립서울현충원]]의 2번 사병 묘역에 따로 장소를 마련하여 묻히게 되었다. 원래 서울현충원은 벌써부터 만장 상태였고, 충혼당이라는 [[납골당]] 건물 안에 화장한 유골함을 봉안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법령상으로는 서울현충원 안장이 불가능했고, 당시 공석이 있던[* 2005년 [[https://www.law.go.kr/법령/국립묘지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국립묘지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 제정 전에 조성된 준장 이상 장군 묘역의 넓이는 26.4제곱미터, 대령 이하 군인 묘역은 3.3제곱미터로 8배 차이였고, 장군 묘역은 화장 없이 매장을 할 수 있었다. 국립묘지법 제정 당시 부칙 제3조에서 "종전의 법령에 의하여 설치ㆍ운영 중인 서울특별시 소재 국립묘지, 대전광역시 소재 국립묘지, 국립4ㆍ19묘지, 국립3ㆍ15묘지, 국립5ㆍ18묘지 및 호국용사묘지에 조성된 안장묘역이 소진될 때까지 안장방법 및 묘지의 면적은 종전의 법령을 적용한다"고 규정하였는데,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대전현충원의 장군묘역이 [[https://www.dnc.go.kr/_prog/_board/?mode=V&no=45137&code=noti|2020.10.27. 만장]]되면서 그 이후 사망자에 대하여는 계급별 구분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전현충원 장군묘역 안장이 원칙이자 최선이었다. 하지만 채명신 장군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사병묘역 안장은 쉽지 않았다. 채명신 장군이 병세가 악화되자 가족과 보좌관들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사병묘역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뜻을 전했지만 국방부나 현충원에서는 장군묘역과 장교묘역, 병사묘역으로 구분하고 있는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때문에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청와대가 나서서 사병 묘역 안장을 추진했고, 유지를 따르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에 따라 국방부는 긴급회의를 열어 고인의 유언을 수용하기로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장군이 자기 신분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되길 희망한 것은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라면서 "숭고한 고인의 뜻을 받들어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에 안장하는 방안을 확정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채명신의 빈소를 찾은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사병 묘역 안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유가족들에게 전달하였으며, 파월 장병 묘역인 서울현충원 2번 사병 묘역에 입구쪽의 남은 공간을 활용하여, 채명신 장군을 위한 안장 장소를 추가로 만들게 되었다. ||[youtube(OXJy9-XkSu4)]|| 그렇게 채명신은 육군장으로 치뤄진 이후에, 대한민국 장성 최초로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장례)|화장]]되어 [[국립서울현충원]]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 때문인지 묘역의 전반적인 구도가 마치 채명신 장군이 '''파월 장병 묘역의 사병들을 이끌고 지휘를 하는 모습'''처럼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23년 9월, 그의 아내 문정인 여사도 타계해 화장 후 [[https://m.youtube.com/watch?v=2aBBOIckbiY|남편의 유해와 합장되어]] '''파월 장병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규정상 국립현충원 안장자의 배우자도 20년 이상 함께 살았다면 합장될 자격을 얻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