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채최박 (문단 편집) == 여담 == 2012년에 [[이승엽]]이 복귀하면서 2년 전에 은퇴한 양준혁에 대해 아쉬워하는 삼성팬들이 많았다. 이유는 단 몇 개월만 더 버텼으면 노장도 우대해주는 [[류중일]] 감독이 부임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양준혁도 저런 아쉬운 은퇴는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 또는 일부 팬들은 선동열이 재계약 실패하고 2009년 가을야구 진출 실패를 이유로 잘렸더라면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었다면 2010년에 양준혁이 은퇴하진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이승엽이 2011년에 복귀하면 양준혁-이승엽이라는 [[삼성 라이온즈/1997년|97년도]] 라인업을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 게다가 선동열은 당시 ''''"[[이승엽 삼성 와도 자리없다.]]"''''는 희대의 [[어그로]]를 끌면서 이승엽이 삼성으로 못 돌아올 뻔하게 만든 원흉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LG 트윈스]] 팬들이 인맥드립을 치면서 이승엽이 정떨어진 삼성에 안 갈 거라는 소리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 일명 엘승엽. 때문에 이승엽은 2010 시즌 후 삼성 복귀를 계획하다 [[오릭스 버팔로즈|그 계획을 한해 늦춰야만 했고]] 결국 [[그러나 이 사진이|이승엽과 양준혁이 현역으로 재회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2020년에는 [[이성곤]] - [[이성규]] - [[김동엽(1990)|김동엽]]의 [[곤규엽]]이 채최박을 이을 삼성의 다음 세대 클린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애초에 저 셋이 채최박급의 임팩트 있는 클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김동엽이야 두 번의 20홈런 시즌이 있지만 이성곤과 이성규는 2019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2군 본즈]]였고 1군에서는 나왔다 하면 관광당하기 일쑤였는데, 2020년 들어서야 포텐이 터질 기미가 보이기야 했지만 두 선수 모든 1990년대 초반생으로 유망주라고 보기엔 힘든 나이였다. 채최박이 결성될 때 셋의 나이가 20대 중반 내지 중후반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애초에 세 명 다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선구안]]이 너무 취약했다. 30홈런 가까이 치고도 타격생산성이 [[강한울(야구선수)|강한울]]과 같았던 김동엽, 2군 홈런왕을 했지만 2군 기록 기준으로 출루율과 타율 차이가 매우 적었던 이성규, 두산서부터 꾸준히 기회를 받았지만 선구안을 고치지 못해서 2차 드래프트로 풀린 이성곤. 무엇보다 저 세 명 모두 서른즈음으로 유망주라 하기엔 나이가 많았다. 삼성은 매우 젊은 투수진과 다르게 야수진에는 '서른 가까이 되는 중고신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의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곤규엽]]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팬들은 곤규엽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노쇠화가 온 [[강민호]], [[이원석(1986)|이원석]] 빼고는 저만한 장타를 칠 만한 선수가 이 당사에 삼성에는 저 셋말고 없기에 적어도 [[허삼영]] 시대에서만큼은 꾸준히 기회를 받았다. 이후 삼성이 [[오재일]]과 [[호세 피렐라|피렐라]]를 영입하면서 삼성은 구피오강이라는 좋은 타선을 만들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