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척준경 (문단 편집) ===== 기동대를 이끌고 여진을 토멸 ===== 이후 완안부가 유격전으로 전략을 바꿔 10개 대로 나뉘어 돌아가면서 고려군을 기습하자 척준경은 왕자지와 함께 일종의 기동 부대를 편성해 유격전을 벌이는 여진군과 교전을 벌였다. 각각 함주와 영주에서 여진의 기동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8월 무자일. 병마판관(兵馬判官) [[왕자지]](王字之)와 척준경(拓俊京)이 함주(咸州)(지금의 함경남도 함흥시, 함주군)·영주(英州)(지금의 함경북도 길주군 일원)에서 여진과 싸워 33명의 목을 베었다. >9월 계해일. 행영병마판관(行營兵馬判官) 왕자지(王字之)와 척준경(拓俊京)이 사지령(沙至嶺)에서 여진을 공격해 27명의 목을 베고 세 명을 사로잡았다. >---- >『고려사』 권12, 세가12 [[예종(고려)|예종]]1 9성 원정 후반부는 고려군이 [[갈라수 전투|갈라수에서 참패]]하는 등 전체적으로 답답한 진행이 이어졌는데 그나마 기동대를 이끈 척준경과 왕자지는 소소하게나마 전과를 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