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척준경 (문단 편집) ==== 제1차 여진 정벌 ==== 1104년 2월, [[여진족]]이 정주성에 쳐들어왔을 때 전면 패주의 위기에 몰린 총사령관 임간 휘하에서 뛰어난 용력을 발휘하며 정평과 선덕관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공을 세웠다. 이때 척준경은 품계도 없는 하급 관리인 별가(別駕) 직책에 불과했다. 이 직책은 향리(鄕吏)의 자손 중에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는 작은 벼슬이었다. 척준경은 총사령관 임간(林幹)에게 직접 말 한 필과 무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품계도 없는 무명에 불과한 소졸이 사령관에게 바로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매우 시건방진 행동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임간은 척준경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기회를 잡은 척준경은 적장 2명을 전사시키고 여진족 추격대를 뿌리치면서 [[고려군]]이 전면 패주하는 상황을 막아냈다. >아군이 패배하자 척준경은 임간에게 부탁해 무기와 갑옷 입힌 말을 얻은 다음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 한 명의 목을 베고 아군 포로 두 명을 되찾았다. 그런 뒤 교위(校尉) 준민(俊旻)·덕린(德麟)과 함께 활을 쏘아 각각 한 명씩을 거꾸러뜨리자 적들이 약간 물러났다. 척준경이 퇴각하는데 적 1백 기(騎)가 추격해 오자 또다시 대상(大相) 인점(仁占)과 함께 적장 두 명을 사살했다. 적들이 전진하지 못하는 틈을 타 아군은 무사히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이 공으로 천우위(千牛衛) 녹사참군사(錄事參軍事) 벼슬을 받았다. >---- >『고려사』 권127, 열전40, 반역1 척준경 그런데 이때 뭔가 잘못되었는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옥에 갇혀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왜 투옥되었는지는 역사서에 나와 있지 않지만 유추해 보면 품계도 없는 하급 관리가 건방지게 총사령관에게 요구한 게 [[높으신 분들]]의 눈에 거슬려서 [[괘씸죄]]를 적용했다거나 공을 세운 것에 우쭐하다가 사고를 쳤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척준경의 공을 시기하여 엉뚱한 죄를 뒤집어씌워서 투옥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때 그의 목숨을 구해주고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줬던 사람이 바로 [[윤관]]이다. 곤경에 빠진 것을 구해준 인연으로 윤관을 따라 [[여진 정벌]]에 참가했고 인간으로는 [[인간흉기|보기 힘든 엄청난 무공을 세우게 된다.]] 이때의 전공으로 하급 남반 신세에서 벗어나 천우위(千牛衛) 소속 녹사(錄事)가 된다. 천우위는 궁중 숙위와 국가 행사에서 의장대 역할을 하던 부대로 핵심 전투 부대인 좌우위, 신호위, 흥위위나 치안 부대인 금오위보다 규모와 중요성이 떨어지나 엄연히 6위의 일원으로 척준경은 여전히 말단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벼슬아치가 되었다고 볼 순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