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천도논쟁 (문단 편집) == 결과 == 3월 20일, 왕징웨이, 탄옌카이, 쑹쯔원, 쉬첸 등 5인이 국민정부 상무위원에 취임하여 정식으로 우한 국민정부가 성립되었다. 이 시기 장제스는 북벌과 정쟁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극도의 피로와 긴장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아내 천제루에게 "앞에는 호랑이가 다가오고 뒤에는 늑대가 버티는데 몸에 창살을 맞은 한 마리의 말"과 같다고 자신의 상태를 표현했다. 그러던 중 3중전회의 결정이 담긴 전보를 받게 되자 장제스는 무척이나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전보를 한쪽으로 내던졌다. 천제루의 회고록에 따르면, 장제스는 두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치며 책상 위의 꽃병을 깨뜨려 버리고, 간이 의자에 쓰러져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고 한다. 한 시간여 동안 장제스는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 그는 책상을 쾅쾅 치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노골적으로 보로딘을 저주했다. >---- >장제스 평전, 조너선 펜비, 민음사, 170~171 페이지. 장제스는 즉각 이러한 조치의 이유를 설명해줄 대표를 파견해달라고 우한에 요청했다. 이에 [[허샹닝]]이 장제스를 찾아와 왕징웨이의 편지, 반장 전단지를 보여주면서 우한에서는 그를 새로운 군벌로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제스는 폭발했다. >천제루는 분노로 추하게 창백해진 남편의 얼굴과 필사적으로 꽉 쥔 손을 보았다고 기록했다. 만일의 경우가 두려워 그녀는 침실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옷걸이에 걸려 있는 권총집에서 총을 꺼내 승마화에 감추어 두었다. (...) 장제스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일어나 침실로 갔다. (...) 천제루가 썼다. "극도의 증오와 격노가 맹렬하게 용솟음치면서 냉정한 판단 능력은 죄다 박살 나고 말았다. (...) 그는 노발대발해서 거품을 문 채 의자 위에서 여행 가방 두 개를 세차게 끌어내려 안에 담긴 것들을 모조리 바닥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권총은 없었다. [[허샹닝|랴오 부인]]과 내가 문간에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그가 분노에 차 소리쳤다. '내 권총 어딨어?' 나는 그의 두 눈이 기묘하게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나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랴오 부인은 필사적으로 그를 진정시켰다. '내 권총 어딨어?' 그는 절망해서 되풀이했다. 새파란 얼굴과 부르르 떠는 손이 보였고 (...) 연이어 정신 착란을 일으킨 듯 길길이 날뛰었다. 그는 탁자 위의 물건들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가구를 마구 부숴버렸다." 랴오 부인이 한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으며, 지금 버릇없는 아이처럼 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집은 그의 소유가 아니고, 게다가 남의 물건을 파손하는 것이라고 일깨워 주기도 했다. (...) "그러자 그는 갓난아이처럼 울음보를 터트리더니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그날 오후와 밤 내내 그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군사 업무도 모조리 중지했다., 그는 아무도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하인도 방 밖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장제스 평전, 조너선 펜비, 민음사, 171~172페이지 하지만 이튿날 장제스는 안정을 되찾고[* 천제루 회고록에 따르면, 권총이 있었다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장제스가 인정했다고 한다.] 상하이-난징 공략을 재개했으며 즉각 3중전회 무효를 주장하며 중국공산당과 쉬첸, 천궁보 등을 친공분자로 비판했고 [[리스쩡]], 구잉펀, 등택여 등 우익 인사들도 3중전회를 보이콧하고 난창으로 향했다. 결국 외교, 재정, 혁명관 등 전 방향에 걸쳐 좌파와 대립하던 장제스는 3월 말의 [[난징사건]]과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해임 이후 무력을 동반한 청당이 불가피하다고 여기고 [[4.12 상하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