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도논쟁 (문단 편집) ==== 우한 천도 결정과 노산회의 ==== 그러던 중 10월 말에 공산당원 [[덩옌다]]와 월계군벌 [[장파쿠이]]도 우한 천도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또한 소련 군사고문 테루니는 미하일 보로딘에게 보낸 보고에서 "두세명의 중앙집행위원이 우한에 와서 위원회를 성립시키지 않으면 당권 확보가 어렵다."고 보고하면서 우한 천도를 촉구했다. 이에 따라 11월 초, 광동의 국민당 중앙정치회의는 국민정부와 중앙당부의 우한 이전을 결정하고 광동성정부 개조에 착수, [[11월 26일]]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 임시회의에서 중앙당부와 국민정부를 우한으로 이전한다는 것을 정식으로 결정했다. 한편 중국공산당은 11월 8일 난창이 다시 국민혁명군의 손에 들어오고 강서 전선이 안정화되자 장제스에 대한 협조 노선을 번복하고 다시 장제스의 군사적 권위를 약화시키는 데에 집중했다. 11월 18일, 중국공산당은 국민정부의 우한 천도와 호북성 정보 조직 문제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며 우한 천도를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여기에는 그간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나쁜 평가를 받아오던 탕성즈가 소련과 중국공산당에 친근하게 굴면서 대중운동과 삼민주의 지지를 천명하여 공산당의 호감을 산 것도 한몫했다. 마침 호남에서는 활발한 노농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중국공산당은 우한 천도가 이러한 혁명 고양기와 더불어서 혁명의 신근거지 마련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1월 16일, 외교부장 대리 [[천유런]], 교통부장 [[쑨커]], 재정부장 [[쑹쯔원]], 사법부장 [[쉬첸]], [[쑹칭링]], [[미하일 보로딘]] 등이 광동을 출발하여 우한으로 향했다. 이들은 12월 1일 총사령부가 있는 난창에 도착하였다. 12월 6일 장제스는 우한 천도는 유익무손하다고 크게 만족을 표했다. 12월 7일 쑨커, 쑹칭링, 보로딘, 쉬첸 등은 장제스와 노산회의를 개최, 쑨촨팡 토벌과 [[장쭤린]]의 연계, 노농운동의 완화, 토지문제 해결을 위한 기초로서 농민운동의 긍정적 수행, 재정통일, 주석제도 폐지, 장제스의 제의에 의해 영왕복직을 결정했다. 이날 장제스는 우한천도가 매우 중요하며 조속히 준비하는 것에 합의했다. 하지만 노산회의 결과는 국민당 우파와 국민당 좌파 모두에게 시원치 않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좌파와 우파 모두 뒤로는 불만족을 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