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일야화 (문단 편집) == 번역 ==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s)라는 이름은 18세기 최초로 번역된 영문판에서 유래한 것이며, [[페르시아어]]의 원 제목은 천일야화이다. [[사산 왕조]] 이후에 [[페르시아]]를 비롯한 [[중동#s-1|서아시아]], [[인도 반도|인도]], 북아프리카(마그레브) 등지의 각종 민담과 전설 등을 한데 모아 만든 "천 가지 이야기"가 그 시초였다. [[이슬람]] 정복 이후 문화가 본격으로 중흥하기 시작한 [[압바스 왕조]] 시대에 아랍어로 번역되면서 아랍 식으로 각색되고[* 주인공은 분명 사산조의 왕인데 [[셰에라자드]]의 이야기 속에는 아랍이 중심이며 [[바그다드]], [[바스라]], [[다마스쿠스|다마스커스]] 같은 아랍 정복 이후의 도시나 [[하룬 알 라시드]] 같은 실제 역사의 사람들까지 등장한다.] 아랍 설화들도 추가되기 시작하여 지금과 같은 천일야화가 되었다. 그래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형태를 갖춘 아라비안나이트는 14세기에서 15세기 [[맘루크 왕조]] 시대 시리아에서 만들어진 필사본이다. 그러나 이 사본도 제282 회째 밤에서 끊긴, 불완전한 책이다. 이 외에도 16세기에서 17세기에 만들어진 아라비안나이트 사본이 여러 개 있지만 모두 중간에서 끊긴 불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동양학자이자 작가였던 앙투안 갈랑(Antoine Galland)[* 이스탄불 프랑스주재 대사로 15년간 근무하면서 오스만어와 아랍어를 익히고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아랍 지역 각지를 여행했다.]이 시리아 필사본을 바탕으로 이집트의 판본과 여러 아랍의 구전을 포함하고 특히 아라비아 나이트의 상당부를 스스로 창착해[* 그래서 아라비아 나이트의 공간적 묘사는 10세기의 바그다드와 14세기 카이로보다 18세기 파리와 유사한 면이 보이기도 한다.] 1714년의 출판한 프랑스어판이 한국인이 아는 아라비아 나이트이다. 현재는 갈랑의 판본을 바탕으로 영국의 동양학자이자 탐험가인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Richard Francis Burton)이 소개한 영역본이 더욱 널리 알려져있다. 이 인물은 탕가니카 호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며, 또 비이슬람인으로 이슬람교 신자만 들어갈 수 있는 [[메카]]에 가기도 했다. 물론 잡히면 그자리에서 사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도한 것이다. 이 사람은 [[아랍어]] 말고도 무려 '''35개 언어 및 사투리를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로 언어학에 재능이 엄청났다. 외교관이자 언어학자, 통역관, 번역가이면서도 아라비안 나이트 완역에 이 사람을 따라갈 이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정성을 들여 죽기 5년 전인 1885년에 완역판을 내놓았다. 서문을 보면 영어에는 없는 표현까지 새롭게 만들어 가면서 아랍어를 완역해 놓았다고 기술했다. 그 전 아라비안 나이트 영역판들이 [[이슬라모포비아]]와 선정성 문제 때문에 엄청난 수정 및 삭제질에서 심지어 이슬람을 죄다 기독교로 만들어 버리는 편역까지 넘쳐났는데 버턴은 이런 걸 대단히 싫어해서 무삭제에 이슬람풍, 아랍 지역 사고방식까지 아랍인 지인들을 이용하여 알아낸 다음 번역에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극의 에로티시즘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비판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천일야화의 다른 면면보다 에로티시즘이 주가 된 작품으로 더욱 알려졌다. 물론 버턴은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번역했기에 버턴의 행동은 문학적으로 정당하고 가치 높은 것이다. 특히 아라비안 나이트를 이용해 중세의 아랍과 페르시아 측의 성 문화가 현대 이슬람권의 엄숙주의와 달리 상당히 자유분방했음을 알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