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하삼분지계 (문단 편집) == 유사 사례 == 제갈량 안대로 진행된 천하삼분은 삼국시대가 유일했지만 중원 대륙이 분열되었을 때 비슷하게 영토가 전개된 예는 있다. 첫 사례는 전국시대 [[시황제|진시황]]의 [[진(통일왕조)|진나라]]. 삼국구도는 아니었지만 어찌보면 삼국보다 더한 전국시대였으며, 진시황은 관중(關中)과 파촉지역을 장악[* 진(秦)나라는 관중에서 파촉으로 확장한 경우고, 촉한은 끝내 실패했지만 파촉에서 관중으로 진출하려 했다. 춘추전국시대 초기에 파촉 지방에는 이민족들이 살고 있었지만 진나라가 힘을 길러 이 지역의 이민족들을 밀어내고 땅을 차지했다.]하여 힘을 기르고 결국 다른 모든 국가를 쓰러뜨리고 중원을 통일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제갈량보다 이전 시대의 일이므로 제갈량이 진나라 통일 과정의 대전략을 어느 정도 참고하여 '융중대(천하삼분지계)' 전략을 수립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실제로 진나라는 파촉을 얻고 바로 초나라를 쳐 후일 형주로 불리게 될 지역을 차지한 다음 천하통일에 성공까지 했으므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 두 번째로는 바로 유비가 한중왕으로 그렇게 벤치마킹했던 그의 조상 [[한고조]] 유방을 들 수 있다. 유방은 촉땅인 한중 남정에서 나와 분열되어 있던 관중을 얻었는데 옛 진나라 사람들의 인심을 잃어 제대로 통치하지 못한 삼진왕을 상대로 했기에 쉽게 '''파촉+한중+관중'''을 확보하는 게 가능하였다. 항우를 상대로 천하를 양분한 유방은 세 지역에서 나오는 막강한 물자와 인력을 바탕으로 끝내 항우를 격파하고 천하를 제패하였으며 이후에도 장안을 도읍으로 [[군국제]]를 실시하였다. [[유경]]의 말 따라 설령 천하의 제후들이 반기를 들어도 요지인 관중과 파촉에서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 [[파일:북제-남진.png|width=100%]] || 삼국시대 이후로는 [[북제]], [[진(남조)|진]]과 함께 천하를 삼분하여 대립했던 남북조시대 북조 국가인 [[북주]]가 있다. 이 국가는 '관중'을 중심으로 형주 북부와 강릉(후량)을 손에 넣고 파촉을 아울러, 관중에 더해 제갈량의 플랜이었던 형주와 익주까지 모두 차지했다. 주변 이민족과 화친을 쌓고 진천(관중)을 확보한다는 전략 또한 비슷하게 흘러갔다. 삼국시대의 촉한과 다르게 관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파촉 지방에 갇혀 말라 죽을 염려도 없었고, 화북의 라이벌 북제와는 수도 '업'을 두고 코앞에서 대치했기 때문에 엄청난 전략적 우위를 가졌다. 실제로 한번 대세가 기울어지자 북주는 순식간에 북제를 밀어버리고 화북 통일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두 국가와 삼국시대 촉한의 영토를 비교해보면 제갈량과 강유가 왜 그렇게 관중 지역을 염원하여 북벌에 집착했는지, 형주를 잃어버린 촉한이 왜 통일 대전략에 크게 멀어졌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북주는 권력 다툼으로 지배 계층만 바뀌었을 뿐 결국 뒤이은 [[수나라]]가 기나긴 중국 분열의 시기를 끝내고 대륙통일을 일궈냈으니 제갈량의 계획이 어찌보면 실현된 셈이다. 건강실록에 따르면 [[손책]]도 천하삼분을 계획했다지만 그냥 그랬다는 말 밖에 없고, 상세한 계획의 내용 같은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걸 구체적인 천하삼분지계로 포함시키기엔 애매하다. 아마도 당시 원소와 조조가 싸우는 사이 자신이 제 3의 세력으로 부상한다는 식의 계획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