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천화진인 (문단 편집) == [[주입식 교육]]? == 현실적으로 천화진인이 만든 시스템은 그렇게 욕 먹을 시스템은 아니었다. 적어도 매화검수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확실한 동기를 부여하며, 화산파의 교육도 단순한 [[주입식 교육]]과는 다르다는 것이 매한옥이 오용사현에 대해서 말할 때 드러난다. 진무각 제자들과 비교당하고 청풍의 시각으로 묘사되어 욕을 먹는 것인데, 사실 진무각 제자나 청풍이나 조금만 잘못하면 죽는 사선을 걸으면서 강해진 것이다. 수련으로는 강해지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 안에서는 매화검수 시스템도 안정적이고 효과적이었다. 젊은 절정고수를 20명 이상 보유한 문파는 거의 없다. 그리고 화산파 운영에는 매화검수 시스템이 필요했다. 속가와 표국이 많아 때문에 체계적으로 이권에 개입하는 정도는 구파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대외적인 사업을 맡기 위해서는 다수의 절정고수들을 키워 중간관리직을 맡겨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것은 이니었고, 시스템 자체에도 문제점이 있었다. 문도들이 [[매화검수]]를 과정이 아니라 '''끝'''으로 인식했고, 매화검수가 되고 나면 만족하게 되어 향상심이 떨어졌다.[* 문도들이 매화검수를 '''끝'''으로 인식하다 보니 매화검수를 선택된 자가 아니면 오를 수 없다라고 생각해 평검수들 중에서도 매화검수가 되기 위한 노력보다는 차라리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된 평검수에 안주하겠다는 생각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2~3년에 한 번씩 열리는 종남과의 대무 회합에서 벌어진 30번의 비무에서 12승 4무 14패로 20년 만에 패배했다고 한다.] 게다가 화산파의 문규와 상벌기준은 터무니없이 혹독해서 한번 임무에 실패한 매화검수에게는 영원히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하운이 있으며, 하운도 어째서 속가 분타에까지 매화검수 출신이 많은지 깨달았다고 한다. 거기에 평검수들의 무공 수련도 참가할 수 없고 매화검수 때처럼 임무도 수행할 수 없고 장서각이나 약사당의 출입에도 제한이 걸리며 거처까지 박탈하고 분타로 나가라고 압력을 준다고 한다.] 거기다 주원장-영락제 시대를 거치며 세상이 평화로워진 탓에 매화검수들이 모자람을 느낄 적까지 없었다. 위의 문제가 합쳐져 젊은 나이의 초절정고수가 탄생하지 않아 난세로 접어들기 시작한 철기맹 발호 시 매화검수들은 [[무당파]] 진무각 제자들에게 한참 밀렸다. 질풍검 후반에는 진무각 제자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이들까지 등장한다. ~~애먼 청풍한테 화풀이해서 찌질함이 배가 된다.~~ 그래도 기초는 확실하게 닦아주는지라, 이 시스템 아래서 성장한 [[매한옥|화산옥검]]이나 [[하운|화산성검]]등은 훗날 크게 성장했다. 매화검수 자격을 박탈당한 뒤에나 성장했고 거의 다 [[청풍(한백무림서)|청풍]] 덕이라는 게 문제지만. 천화진인이 만든 체계의 단점은 [[청풍(한백무림서)|청풍]]의 활약으로 해결되며, 이후 [[매한옥]]과 [[하운]]도 화산파를 대표하는 고수로 성장한다. [[천잠비룡포]]에서 나온 십익의 다음 세대 이야기를 보면 팔황과의 싸움이 끝난 뒤에는 화산파의 최전성기가 오는 모양이다. 천검과 청풍의 성향이 잘 맞물린 듯 후대의 용안상주도 실리와 이상의 조화라고 평가했다. 종합하면 천화진인은 위태로웠던 화산파를 다시 중흥기로 이끌었으며, [[화산질풍검]] 본편 동안 그 부작용에 문파가 잠시 흔들리기는 했으나 결국 화산파 최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했다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