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철산군 (문단 편집) == 상세 == 광복 당시 면적 455.5 ㎢, 철산(鐵山)·백량(柏梁)·부서(扶西)·서림(西林)·여한(餘閑)·참(站)의 6면으로 되어 있으며, 군청소재지는 철산면 중부동이었다. 참면, 서림면을 [[경의선]]이 지나고, 앞바다는 갯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도]](假島)·[[탄도]](炭島)·[[대화도]](大和島) 등 섬이 많다. 워낙 외진 곳이라, 1970년에 [[조선인민군]] 특수부대가 [[한국군]]으로 '''[[위장]]'''하고 상륙훈련을 했는데, 이를 본 주민들 중 일부가 [[한국군]]이 진짜로 온 것으로 착각하고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환영하는 바람에''' 주석궁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고 한다. 상황을 오해한 주민들은 당연히 [[요덕 제15호 관리소|요덕]]으로...[*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북한 정권의 통치가 결코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고려 시대 제1차 몽골 침공 당시 [[철주성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며, 조선 시대에는 명의 [[모문룡]]이 이곳의 가도[* 조선 조정이 말을 풀어 기르는 목장]를 불법 점거하기도 했다. 구한말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조선혁명군]] 사령 [[양세봉]](1896~1934).[*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양세봉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북한 정권의 김일성은 양세봉의 아들들을 북한에서도 특권층만이 살 수 있는 도시인 평양으로 이주시켜 살게 해 주기도 했다. 남한의 [[국립서울현충원]]과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모두 묘가 조성되어 있는 등(물론 남쪽이 가묘), 양세봉은 사실상 '''남한과 북한 모두가 공통되게 "독립운동가"이자 "영웅"으로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105인 사건]]에도 가담하여 옥고를 치렀고, 해방 이후에는 김창숙 등과 함께 야당 활동을 하면서 자유당 정권의 전횡에 맞섰던 이명룡(1873~1956),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해방 이후 [[독립노동당]]을 창당해 활동하고 [[신민당]] 운영위원으로도 활약했던 운암 [[김성숙]](1898~1969)이나 [[한국광복군]] 제3지대 본부 부관실 부관주임으로 1992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장호강]](1916~2009) 역시 철산 출신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