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철종(송) (문단 편집) === 황제가 되기 전 === [[송신종]]의 6남이자 [[흠성황후 주씨|덕비 주씨]][* 사후 흠성황후로 추존되었다. ] 소생으로 희녕 9년 12월 7일 기축에 궁 안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이름은 용(傭)이었다[* 송사 본기 철종 1권]. 검교태위, 천평군절도사를 부여받았고 균국공에 봉해졌다가 원풍 5년, 개부의동삼사, 창무군절도사로, 이후 1082년 연안군왕으로 진봉되었다. 원래 신종의 6남이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황제가 되기 힘든 게 사실이었지만, 다섯 형이 모두 [[요절]]하면서 살아있던 형제 중 장자가 되었다. 아버지였던 신종이 원풍 8년(1085년) 2월 업무를 못 볼 정도로 위독해지자[* 송사 본기 철종 1권에 따르면 당시 신종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병세가 위중했다고 한다.] 서둘러 조정 대신들이 황태자 건저를 올려 신종과 신종의 모후 [[선인성렬황후 고씨]]에게 동의를 구했고, 대신들의 주장에 황제와 황태후가 허락하면서 후계건저가 논의됐다. 이때 철종의 할머니 선인성렬황후는 국정 안정을 위해 어린 손자들 대신 성년에 접어든 선황 영종과 자신의 아들[* 신종의 동복동생들은 3명이 있었다. 오영왕(吳榮王) 조호(趙顥), 윤왕(潤王) 조안(趙顔), 익단헌왕(益端獻王) 조군(趙頵). 여기에서 신종의 후계자로 언급된 형제는 오영왕 조호, 익단헌왕 조군이었다.], 즉 신종의 동복동생 중 한명에게 송 신종의 뒤를 잇게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형서, 채학 등 대신들은 예법에 따라 신종의 장남이 있기에 아니된다고 주장했고 선인성렬황후 역시 자신의 주장을 거둠으로써 신종의 장남인 연안군왕 조용이 황태자로 추대되었다. 신종의 동의 이후, 선인성렬황후가 교서를 반포하며 연안군왕을 황태자로 봉했으며[* 당시 성인성렬황후는 교서에서 "황자의 성품이 씩씩하고 의젓하며, 배우는 것을 좇음이 영리하다. 스스로 황제에게 약을 먹이고, 손수 불경을 쓰며 황제를 기원했다."고 알렸다. -송사 본기 철종 1권-], 1085년 3월에 연안군왕은 정식으로 황태자가 되었는데 황태자 책봉 때 휘를 용에서 후(煦)로 바꿨다. 그리고 원풍 8년(1085년) 3월 아버지 신종이 붕어하자 불과 9살의 나이에 황태자 조후가 송조의 새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죄를 용서받지 못한 자들에게 대사면을 내렸으며 [[요나라]]에서도 사신이 와서 신종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송사 본기 철종 1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