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철종(송) (문단 편집) == 여담 == * [[김용(1924)|김용]]의 소설 [[천룡팔부]]의 막바지에 선인성렬황후가 임종을 앞두는 장면에서 등장하여 신법파를 등용하고 [[요나라|요]]와 전쟁을 꿈꾸는 모습으로 나온다. 철종이 친정을 시작하며 중신들을 물리치자 요의 [[도종(요)|도종]]이 기뻐하며 송나라 침공을 계획한다. * [[고려]]의 제11대 국왕 [[문종]]의 넷째 아들이자 [[순종(고려)|순종]], [[선종(고려)|선종]], [[숙종(고려)|숙종]]의 동생인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이 고려 선종 2년인 1085년 4월에 송나라로 비밀리에 유학갔을 당시[* 의천은 깊은 공부를 위해 일찍부터 송나라 유학을 가기 원했지만 아버지 문종이 위험한 바닷길로 가야하고 복잡한 국제 정세까지 고려해볼 때 송나라 유학은 안 된다고 해서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따라서 문종과 큰형 순종 생전에는 송나라 유학을 가지 못했던 의천은 비밀리에 두 사람만 데리고 송나라 상선을 타고 가게 되었다. 아버지와 형과 마찬가지로 동생의 유학을 반대했던 선종은 뒤늦게 동생 의천을 찾으러 군사까지 보내 쫓았지만 이미 의천이 멀리 가버린 탓에 데리고 오지 못했다고 한다.], 북송의 수도 변경에서 만났던 당시의 황제가 바로 철종이었다. 이때 철종과 의천의 휘가 후(煦)로 같아서 의천은 철종과 만났을 때 피휘(避諱)하여 이름 대신 자(子)인 의천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당시 의천의 나이는 30살이었고 철종의 나이는 10살이었다.]. 고려 왕자이자 고려 국왕의 친동생이 송나라까지 왔던 만큼 당시 철종은 의천대사를 극진히 예우했고 의천이 명승(名僧) 대덕(大德)을 두루 만나 볼 수 있기를 청하자 철종은 북송 당대의 명승들이 의천과 만나 불교를 논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 의천의 입국을 반대해왔던 [[소식(시인)|소식]]([[소동파]])이 고려 국왕의 친동생인 의천대사의 개인 가이드 역할을 했다고 한다.]를 제공해주었다. 이후 의천은 불법 연구를 활발히 하고 송나라에 절과 교단 등을 세우며 활동했지만 아버지 문종, 형 선종과 마찬가지로 아들의 유학을 걱정하고 반대했던 어머니 인예왕후의 강권 등으로 1086년 6월 강제 귀국 조치되어 고려로 돌아가게 되었다[* 귀국 직후 의천은 형이자 국왕인 선종에게 걸죄표를 올려 국왕의 명을 어기고 송으로 유학간 것을 사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