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철학사/동양 (문단 편집) === 근현대 === 이후 영국이 인도에 침입하여 쇠퇴기에 접어든 무굴 제국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강성한 [[시크교]]국과 [[마라타 동맹]]마저 제압한 데 정신적 충격을 겪게 된 인도의 사상가들은 힌두교의 개혁을 두고 서구화와 전통의 사이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데, 람 모한 로이는 서구 문화를 수용하여 힌두교 전통을 개혁하고자 했던 반면, 다야난다 사라스와티는 힌두교의 개혁이 서구화가 아닌, 전통을 재발견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대에 인도로부터 불교가 유입되었던 스리랑카의 경우 싱할리족이 주로 믿는 상좌부 불교가 영국계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의협을 받있으나 파아나두라 대논쟁에서 상좌부 불교계가 기독교 선교사들을 논파하면서 불교의 부흥이 이루어졌다. 일본 불교계 역시 파아나두라 대논쟁에서 불교계의 승리에 고무되었으며 이는 상좌부 불교 경전과 교리가 일본에서 연구, 재해석되는 계기가 된다. 영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인도 민족주의는 마하트마 간디와 자와할랄 네루에 의해 발전되었는데, 간디는 영국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을 인도 철학이 전통적으로 지향해 왔던 해탈과 연결시킴으로써 정치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했다. 그 밖에 라마크리슈나의 제자인 스와미 비베카난다, 인도의 시성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슈리 오로빈도 고슈, 인도 대통령을 역임한 라다 크리슈난 등이 근대 인도의 주요 사상가로 꼽힌다. 그리고 인도의 초대 법무장관을 역임한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는 만년에 인도에서 오랫동안 그 명맥이 단절된 불교를 서구식 무신론,불가지론과 결합시키며 현대화인 방향으로 부흥시키는 운동을 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