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구동계 (문단 편집) === 공화계 === 이때 정치 규제를 받지 않은 잔류 공화계들이 [[한국국민당(1981년)|한국국민당]]을 창당했고,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아쉽지만 일부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에서 당선자를 내며 괜찮은 25석의 성적을 거두었다. 구 민주공화당의 영향력이 매우 많이 미쳤으며 김종필의 영향도 소수 있었다.[* 다만 이때 김종필은 정치활동에 규제가 있었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20석을 거두며 경기도, 강원도, 전북도를 중심으로 당선자를 냈으나 [[신한민주당]] 돌풍 때문에 원내 제4당이었다. 다만 관제야당인 만큼 실제로 한 일이 있었다기 보단 그냥 구 민주공화당(유신세력)을 정당화한 단체였다. 1987년 3김의 해금 이후 김종필은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한국국민당의 현직 국회의원 8명과 대부분의 당직자, 지역조직이 신민주공화당으로 넘어갔다. [[충청도|충청]]지방을 바탕으로 했는데, 이 충청 지역주의는 ([[대경권|TK]]의) 군부세력과 상도동계의 영남(PK) 지역주의[* 상도동계는 영남 지역주의를 보였지만 사실상 지역 기반이 구 PK, 현 부울경이었다.], 동교동계의 호남 지역주의와 함께 3(4)대 지역주의로 떠올랐다.[* 군부세력은 딱히 언급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영·호남 지역주의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각 자신의 연고지에서 50% 내지 80~90% 이상의 몰표를 받았을 정도로 강력했던 반면, 충청 지역주의는 김종필이 충남에서만 1위는 했어도 과반은 못 했고, 충북에서는 영남계 보수정당에 밀릴 정도로 미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