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구동계 (문단 편집) === 청구동계 === 어쨌거나 이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면서 공화계 + 일부 민정계라는 청구동계라는 기반은 확고해졌으나, 김종필이 끝내 대통령이 되지 못함으로서 3김 중 가장 미약한 계파로 떨어졌다. 다만 위치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성적을 바탕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충청권을 비롯해 '원조보수' 정당으로 대경권과 일부 수도권 지역에서도 당선자를 냈다. 이 52석을 기반으로 79석의 [[새정치국민회의]]와 [[DJP연합]]으로 연정에 성공하며 [[김종필]]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내각에 입성하며 김종필을 필두로 한 계파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좀 더 나은 성적을 거두며 기반이 확실하게 다져졌다. 그러나 [[DJP연합]]은 후기로 갈수록 갈라지며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일화에 실패하고 충청권도 석권을 못하며 17석의 제3당으로 떨어졌으나 관계가 조금 회복되어 의원 꿔주기로 교섭단체 지위를 회복했다. 그러나 대북정책에서 이견을 보여 연정이 깨지고 다시 비교섭단체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탄핵 역풍으로 충남에서 4석, 경북에서 1석[* 자민련계 무소속], 비례에선 '''0석'''[* 비례대표에서 '''2.8%'''로 아주 아깝게 0석.]으로 원내 제5당, 제4야당으로 전락한다. 결국 김종필이 2004년 은퇴하면서 계파 자체가 사실상 파묻히는 듯 싶었으나... 잔류 청구동계가 대체정당인 [[국민중심당]]을 창당하면서 아직은 계파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이후 김영삼이 영입했으나 민정계의 지지를 받던 [[이회창]]이 가담해 [[자유선진당]]을 창당하면서 2012년까지는 청구동계가 그나마 힘을 발휘하였다. 즉 3김 계파 중에서는 그나마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계파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2012년 [[새누리당]]의 돌풍으로 몰락했고, 설상 자유선진당도 [[선진통일당]]으로 개편되었으나 [[2012년]] [[11월 16일]] 새누리당과 합당함으로서, 이 계파도 사실상 죽었다. 현재는 상도동계나 동교동계처럼 그냥 잊혀진 계파일 뿐이다.[* 동교동계는 [[2004년]] [[4월 15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 사실상 사라졌고 상도동계 역시 [[1997년]] [[3월]] [[이회창]]이 대표가 되자 약해지기 시작했으며 [[1998년]]~[[1999년]] 사이에 대다수가 정계 은퇴하거나 국민신당으로 탈당, 혹은 다른 계파로 흡수되면서 소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