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보식품 (문단 편집) == 풍한방직은 어떤 회사? == 풍한방직은 [[일제강점기]] 내외흥업이 전신으로, [[평양시|평양]] 출신인 김영귀(1911~1999)가 설립한 기계 판매 업체였다고 한다. 그러다 [[8.15 광복]] 후 일본의 방직 관련 [[적산]]을 불하받은 것을 계기로 방직업에 진출하여 [[1952년]] 풍한방직이 생겼다. 기업 연고지는 당시 [[충청남도]] [[대전광역시|대전시(現 대전광역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라진 방직 회사라고 해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 [[리즈 시절]]인 [[1960년대]]까지는 한때 [[삼성그룹]]의 [[제일모직]]에 버금갈 정도로 방직업계에서는 큰 기업이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1970년대]]에 제대로 휘청거리면서 풍한방직 자체는 정부지원금을 받고도 부도를 냈고 한때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주식을 잠깐 가진 적도 있으나 '''잠깐'''뿐이었다. 다만 이 와중에 사장인 김영귀 본인은 본업이 망했어도(...) 부동산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인지 풍한방직 자체가 매각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은듯했다. 어쨌든 창업주 김영귀의 아들 김정우가 경영을 맡으면서 [[1980년대]] 들어 식품사업에 뛰어드는데 '''이것이 청보식품의 시작이었다.''' 청보식품이 [[오뚜기]]에 매각된 뒤, 모기업은 풍한산업으로 바뀌고 신라종합개발에 인수되어 이름만 유지하다가 2004년 법정관리를 졸업했으나,[* 현재 사명은 (주)풍안건설. 방직 부문은 물적분할되고 영동으로 옮겨졌다.] 1년 뒤인 2005년에는 풍한방직 최후의 회장이었던 김정우 회장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풍한방직터는 두 군데가 있었는데 하나는 [[대전광역시|대전시]] [[중구(대전)|중구]] 오류동 공장부지였고 하나는 [[대덕군]] [[신탄진동|신탄진읍]] [[석봉동|석봉리]][* 현 [[대덕구]] 석봉동. 대덕군은 1989년 대전시가 대덕군과 통합하여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대덕구가 설치되었다.]의 부지였다. 대전 토박이들 사이에서 풍한방직 터라 하면 보통 후자를 지칭하는데 석봉동 공장은 1983년 10월 13일에 한번 화재 사고가 났었다.[* 화재사고가 나기 전에 1982년 말에 보험에 가입을 했는데, 건물 38억 4천 2백 53만 원, 기계 72억 9천 5백 94만 원, 동산 45억 원 등 총 157억 7587만 1천 원에 보험에 가입했다고 한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10200099202028&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83-11-02&officeId=00009&pageNo=2&printNo=5435&publishType=00020|당시 기사]]] 오류동 공장은 1985년 2월에 335억 원의 가격으로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종합건설]]에 팔렸으며,[[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22500329202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2-25&officeId=00032&pageNo=2&printNo=12126&publishType=00020|#]] 1986년 12월에 삼성아파트가 준공되었고, 석봉동 공장은 2000년대 중반까지 [[폐건물]]로 남아 있다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초고층 아파트 [[금강 엑슬루타워]]가 들어섰다. [[http://blog.daum.net/ilovyouu/15596103|철거되기 전 석봉동 풍한방직 터 사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