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청어 (문단 편집) ==== 일본 ==== 일본의 청어 어업은 동북아 3국 중 가장 늦었다. 하지만 에도 막부 시기인 17세기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전국적 유통망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했다. 당시 일본의 농업 생산량과 상품 작물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비료 제작 산업이 활황을 띄었다. 원래는 [[정어리]]를 가열하고 압착해 어유를 추출한 뒤 남은 깻묵으로 비료를 만들었는데, 때마침 정어리가 사라지고 소빙기의 영향으로 청어가 급증하면서 일본 북부 해안으로 넘어오자 원료가 정어리에서 청어로 변화했던 것이다. 에도 시대 어부들은 청어를 쫒아 북상하면서 마침내 당시는 [[아이누]]의 영역이던 [[홋카이도]]까지 도달했는데 이는 일본의 홋카이도 식민지화의 첫 단계였다. 홋카이도 남부에 위치한 [[마쓰마에]] 번에서는 청어와 연어를 찾아 가신들에게 특혜를 주어 홋카이도 해안 곳곳을 개척시켰다. 이때 임노동자로 아이누 부족들을 헐값에 동원하며 아이누의 생활 양식을 파괴하는 바람에 여러 차례 반란에 직면하기도 하였으며, 일부는 [[사할린]]까지 올라가다가 [[러시아 제국]]과 만났는데 이는 양국의 최초 조우였다. 쨌든 이렇게 잡힌 청어들은 인근의 집산지에서 크기별로 분류되어 가공된 후, 운송업자들의 전국적인 유통망을 거쳐 일본 각지에 납품되었다. 당시 일본의 주된 청어 가공 식품은 하술할 미가키니싱으로, 우리나라 연관목, 또는 유럽의 훈제 청어와 비슷한 제품이다. 우선 청어의 내장을 제거한 뒤 바싹 훈연하여 만드는 훈제품으로, 주로 상등품이 청어가 가공되었다. 청어가 나지 않는 서일본, 그것도 내륙인 [[교토]]의 명물이라는 점에서 당대 일본의 청어 산업이 얼마나 고도로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하급품 청어는 우선 대량으로 쪄낸 후 압착하여 청어 어유를 분리한 뒤 [[등유]]로 팔고, 남은 깻묵은 상술한 대로 [[비료]]로 가공해 각지의 농장에 팔았다.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편, 일본이 개항한 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기존의 어유 산업이 특히 발전하였다. 어유에 수소를 첨가해 경화유로 가공하면 [[윤활유]] 등의 각종 산업적 용도로 쓸 수 있었던데다 [[비누]]의 원료도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곧 일본 근해의 청어는 남획되었고, 식민지로 편입된 조선 동해안에도 수많은 어유 생산 공장이 들어섰다. 이때 가공된 청어와 [[정어리]] 어유는 [[일본 제국 해군]] 함대의 주요 동력원으로도 쓰였으며 한때는 일제가 바이오매스로 에너지 자급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러나 1940년대부터 청어와 정어리가 일본 근해에서 사라지며 안그래도 중일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던 일본 제국의 연료 공급에 엄청난 차질이 빚어졌고, 일제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소나무에서 [[송근유]]를 채취하기에 이른다. * '''미가키 니싱''' 한국의 과메기와 유사한 말린 청어. 다만 [[간장]] 양념을 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교토]]의 특산물로, 교토에서는 청어 산지에서 건제품을 가져와 양념하여 완성한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는 일본 한자어를 그대로 읽어 '''청어신흠(靑魚身欠)'''이라고도 불렀다. * '''어유''' 청어 기름. 에도 시대부터 생산하다 근대 들어 청어 산업의 주 상품이 된 제품. 어유 그대로는 하급 등유로 쓰지만, 수소를 첨가하는 정제 과정을 거치면 [[경화유]]가 되어 각종 산업용으로 쓸 수 있다. * '''[[비료]]'''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이용해 만든 [[유박]]비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