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스(뮤지컬) (문단 편집) == 창작의 계기 ==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는 70년대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같은 명작을 만들어 큰 성과를 거뒀지만,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라이스는 성경에서 소재를 따온 JCS나 아르헨티나 정치 이야기를 따온 에비타에 이어 냉전 시대의 분위기를 소재로 삼은 뮤지컬을 구상하고 ALW에게 제안했지만, 이 무렵인 1979년에 ALW는 [[캣츠]] 작업을 하고 있었고 오히려 라이스에게 주요 넘버인 'Memory' 의 작사를 해달라고 하는 판이었다. 라이스는 망설이다가 작사를 했지만 결국 ALW는 라이스가 작사한 가사를 제출하기 전에 연출감독 트레버 넌에게 가사를 문의했고, 라이스는 안 한다던 결정을 번복하고 가사를 쫙 써서 냈지만 ALW가 열 차례의 프리뷰 공연 끝에 트레버 넌이 쓴 가사를 채택하는 바람에 라이스는 그 길로 ALW와 완전히 척을 진다. 결국 다른 작곡가를 알아봤는데, 미국 출신 프로듀서 리처드 보스의 제안으로 자기가 좋아하던 당대 최고의 그룹인 [[아바]]의 베니 안데르손, 비에른 울베우스와 만나게 된다. 마침 아바 외의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던 둘도 팀 라이스와 손을 잡아 뮤지컬 작곡을 하게 된다. 한편 아바는 80년대 초중반 무렵 두 커플의 이혼으로 사실상 해체되었는데, 이 타이밍이 절묘해서 아바 앨범을 위해 작곡된 곡들이나 이미 발표된 곡들에서 멜로디를 따오고 가사만 바꾼 곡들이 이 작품에 들어가고 팀 라이스가 작사한 노랫말에도 울베우스가 아바의 가사로 생각해뒀던 가사가 조금 차용된다. JCS나 에비타를 무대 공연에 앞서 컨셉 앨범으로 먼저 내서 재미를 본 팀 라이스였기에 체스 역시 컨셉 앨범을 발매한 뒤 1986년에 웨스트엔드 무대 공연을 처음 시작했다. JCS 컨셉 앨범의 유다였던 머리 헤드[[어둠의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를 느끼며|(...)]][* 원어 표기는 Murray Head. '''Murray의 발음은 mʌɹi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머리라고 쓰는 게 맞다.'''(...) 하지만 이러한 어감 문제와 실제 발음이 미묘하다는 점, 스펠링 문제도 있고 해서 Murray는 머레이라고 표기하는 게 보통. ~~절대 말장난하려고 머리 헤드라고 쓴게 아니다.~~](프레디 - 미국인), 스웨덴 출신의 토미 쇠베리(아나톨리 - 러시아인), [[에비타]]와 [[캣츠]]만으로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일레인 페이지(플로렌스 - 영국인), [[블러드 브라더스]]로 로렌스 올리비에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바버라 딕슨[* 에비타 컨셉 앨범에서 이름없는 [[후안 페론]]의 애인 역으로 참여했고, 유일한 넘버인 Another Suitcase in Another Hall을 불렀는데 그게 대박을 쳤다. 훗날 호주 멜번 공연에서는 스베틀라나가 아니라 플로렌스 역으로 출연했다. ](스베틀라나 - 아나톨리와 별거 중인 아내) 등 캐스트가 굉장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무대 공연을 앞두고 무대 감독으로 내정된 마이클 베넷이 [[AIDS]]로 발병한 림프종으로 사임하며(1987년 사망) 트레버 넌이 대신 감독을 맡고 컨셉 앨범에서 스베틀라나 역을 맡았던 바버라 딕슨이 다른 작품 출연 때문에 시오반 맥카시로 교체되는 등의 난관이 있었지만 라이스는 아랑곳않고 프린스 에드워드 시어터에서 흥행하던 '''[[에비타]]''' 공연까지 내리면서까지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체스를 올리겠다고 자신의 노후를 보장해줄 보험과도 같은 작품을 내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해에 ALW의 [[오페라의 유령(뮤지컬)|오페라의 유령]]이 올라왔다.'''[* ALW가 아무 이유 없이 에비타 끝내는걸 두고 볼리는 없다... ] 더욱이 오유는 ALW가 작사가로 라이스를 강력히 원했지만 그간 서운한 감정이 쌓이기도 했고 체스 작업에 워낙 몰두해있던 라이스였기에 결국 다른 무명의 작사가를 섭외하여 만든 작품이어서 묘한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체스는 1986년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뮤지컬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토미 쾨버그, 일레인 페이지)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상을 하나도 못 받았다.(작품상은 오유, 남우주연상은 오유 [[에릭(오페라의 유령)|팬텀]] 역의 마이클 크로포드...) 그래도 아바의 팬덤과 라이스의 이름값이 여전히 굳건하게 남아있어서인지 적은 수익으로나마 3년은 버틸 수 있었고, 브로드웨이 공연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라이스는 브로드웨이에서도 주디 쿤 등의 브로드웨이 정상급 스타들을 뽑아서 올렸는데, '''이를 관람한 미국인들은 일제히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600만불 이상의 손해를 보고 참혹하게 막을 내렸다. 웨스트엔드에서는 그래도 잘 버틴 작품이 이모냥 이꼴로 망한 이유는... 아래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다. 팀 라이스는 21세기가 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에비타와 함께 체스를 꼽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역량과 자본을 쏟아부은 체스가 최대의 시장 미국에서 겪은 처참한 실패는 굉장한 [[흑역사]]였으며 체스의 실패 이후 뮤지컬 공연 자체에 환멸을 느꼈을 정도라고. 더욱이 이 프로덕션의 실패로 "팀 라이스는 자기 맘대로 작품을 만들어도 걸작이 나올 수 있는 일급 작사가"라는 세간의 신뢰에 금이 가게 되었다. 한마디로 업계에서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 때문에 이후 라이스의 작품들은 이런 무거운 소재가 아니라 [[미녀와 야수(뮤지컬)|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뮤지컬)|라이온 킹]] 같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각색한 가족 뮤지컬로 방향이 바뀌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