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체첸클리어 (문단 편집) == 배경 == [[캅카스]] 지역은 예전부터 [[러시아]]와의 갈등이 심했고 애초에 근본 자체가 '''[[이슬람]] 문화권'''이었다.[* 그러나 캅카스에서도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일대는 전통적으로 [[기독교]]가 자리잡았다.] 하지만 [[소련]]이 수립된 후 [[이오시프 스탈린]]-[[니키타 흐루쇼프]] 집권기부터 이들에 대한 종교 탄압은 암묵적인 방법에서 점차 표면화되고 있었다. [[러시아]]가 캅카스 산맥을 넘어 [[캅카스]] 지역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캅카스 지역과 [[카스피해]]에 있는 유전지대에 대한 행사권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 지역들에서 나는 유전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가치가 엄청났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가 [[청색 작전]]을 계획한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이에 체첸 반군은 캅카스 일대의 독립을 위해 무력 독립운동을 일으켰고 이는 곧 [[체첸 전쟁]]으로 이어졌다. [[제2차 체첸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여전히 캅카스 일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이에 불만을 가진 체첸 반군 출신들이 캅카스 일대 각지에서 유격전을 벌이면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비슷한 게릴라 전법을 사용했다.] 러시아를 골치 아프게 했는데 해당 영상은 이때의 영상이라고 보면 된다. '체첸클리어'는 본 영상의 제목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이슬람]] 반군의 모토이자 구호였다. 번역하면 '체첸 정화 운동의 일환'으로서 구체적으로 체첸 [[인종청소]]를 뜻하는 문구다. 이러한 종류의 인종청소는 전세계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쉬워서 실제로 인종청소를 시도했던 [[르완다]]의 후투족 지도자들이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도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체첸인]]들은 이러한 의도를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체첸군의 학살 영상들은 모두 '체첸클리어'로 불리며 이 영상들 중 유명한 [[스너프]] 필름으로는 다게스탄 참수 영상이 있다. 촬영 시기는 [[1999년]]으로 추측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