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무왕 (문단 편집) == 치세 == 분모 17년(기원전 741년), 초 무왕은 형 분모를 [[살해|시해]]한 뒤 초나라의 [[군주]]에 올랐다. 그는 등나라 후작(鄧侯)의 딸 등만(鄧曼)을 아내로 삼았다. 그리고 [[투백비]](鬭伯比)를 영윤으로 임명하고, 굴하(屈瑕)를 막오(莫敖)에 봉하면서, 국력이 날로 신장되어갔다. 그런데 초나라는 강한(江漢) 지역에서 가장 강성한 국가였지만 작위는 자작으로 매우 낮았다. 국력에 걸맞지 않는 작위로 인해 무왕의 불만은 커져갔다. 주 환왕 16년이자, 초 무왕 37년([[기원전]] 704년) 여름에 침록 부근에서 회맹을 가졌는데, 파, 용, 복, 등, 교, 나(羅), 진(軫), 신, 이, 운, 강이 참여했다. 황나라와 수나라가 오지 않자 무왕은 대부 위장을 보내 황나라를 책망하고 막오 굴하로 하여금 수나라를 치게 하여 수나라를 대파한다. 패배한 수후는 달아나고 거우인 투단은 수나라에서 포로를 잡고 전리품을 얻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웅철은 왕을 자칭하니 바로 초 무왕이다.[* 당시 한수 동쪽의 열국 중 수나라가 가장 강성했다.] 초 무왕 41년(기원전 700년), 초군은 교나라에게 승리하고 정립성 아래서 회맹을 가졌다. 초 무왕 42년(기원전 699년), 굴하로 하여금 나나라를 치게했는데 패전하였다. 굴하는 패잔병을 거느리고 황곡으로 갔으나 초 무왕의 꾸지람을 듣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자결|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이때 변화가 화씨지벽의 원석을 바쳤다가 오른쪽 다리에 월형을 당했다. 초 무왕 51년(기원전 690년), 수나라를 정벌하는데, 한수 동쪽에 이르러 갑자기 초 무왕이 병이 들어 죽었다. 초나라의 영윤 투기와 막오 굴중은 초 무왕의 발상을 비밀에 부치고 여전히 안원에서 동진할 계획을 세웠다. 초군들이 수나라의 성 근처에 이르자 수의 군신들이 굴복하였다. 초군이 회군하자 한수를 건넌 뒤 발상하고 그 뒤를 이어 아들 웅자가 즉위하니 그가 [[초문왕]]이다. [각주] [[분류:초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690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