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밥 (문단 편집) === 발효 없는 에도마에 스시의 등장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에도 시대 스시 야타이.jpg|width=100%]]}}}|| ||<:>{{{-1 19세기 에도의 스시 야타이(屋台, 매대)를 촬영한 사진.}}} || [[에도 시대]]에는 정권의 중심지가 에도(지금의 [[도쿄]])로 옮겨가게 되었다. [[에도 막부]]는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개발된지 비교적 얼마 되지 않은 에도를 그럴싸하게 꾸미기 위해 온갖 직공들을 초대하고, [[다이묘]]들을 [[참근교대]] 제도로 번갈아가며 에도에 강제로 불러들였다. 식사를 만들 여유가 없는 직공과 다이묘의 수행원들로 가득찬 에도에서 빠르게 대량의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야타이([[포장마차]])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초밥도 당연히 한몫 자리잡아 [[패스트푸드]]가 되었다. 다만, 생선을 발효시키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생산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자 에도는 바다가 가까워 날생선이 빨리 들어온다는 점을 이용하여 발효를 생략하는 대신 [[식초]]를 부어 생산속도를 높인 초밥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식초는 부패를 방지하며 날생선의 비린내를 잡고 맛을 정리하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며, 발효식품의 풍미까지 첨가되니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 이렇게 만드는 초밥을 빠르게 만든다는 뜻에서 '''하야즈시'''(早寿司)라 부르기 시작했다. 1700년대부터 스시는 발효시간을 줄이고 식초의 첨가량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는데, 결국 '발효를 전혀 하지 않은 스시'가 탄생하고 만 것이다. 원래는 생선을 어떻게든 오래 보관하려고 만든 [[발효]]식품이었는데, 이제는 발효와 무관하게 하루만 잘못 보관해도 식중독에 걸릴 수 있는 요리가 되어버렸으니 극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하나야_요헤에_초밥.jpg|width=100%]]}}}|| ||<:>{{{-1 하나야 요헤이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최초의 니기리즈시를 묘사한 그림.[br]메이지 15년(1882년)에 카와바타 교쿠쇼(川端玉章)가 하나야 요헤에의 4대손이 재현한 초밥을 그린 것이다.}}} || 거기서 한술 더 떠 번거롭게 일일이 틀에 찍어내는 대신 즉석에서 손으로 쥐어주는 '''니기리즈시'''(握り寿司)가 탄생하였다. 비좁은 야타이에서 초밥틀을 치워버리자 공간 활용도 편해지고 생산 속도도 빨라졌다. __흔히들 '초밥'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것이 니기리즈시다.__ 따라서 현대적인 초밥의 역사도 사실상 여기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때를 대충 분세이(文政, 1818~1830년 사이) 시대로 추정하며, 일설에는 료고쿠라는 요리점의 하나야 요헤이(華屋与兵)라는 사람이 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일식 체인점이 있다.] 니기리즈시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설도 있다. 대표적인 이설은 에도에 올라온 어떤 [[다이묘]]가 심심한 건지 인내심이 없는 건지 자꾸 초밥을 내놓으라며 [[조리사]]를 달달 볶으니 열받아서 만들었다는 설.[* 그래서 이를 주제로 한 창작물도 간간히 있으며, [[미스터 초밥왕]]에도 [[모큐멘터리]]의 형태로 외전 에피소드를 연재한 적이 있다.] 생선의 처리 방법 또한 점차 변하여서 초창기에는 [[밥]]과 [[생선]] 모두 초 처리를 했지만[* 현재도 고등어, 학꽁치 같은 등푸른 생선류는 비린내 잡는 목적도 있으나, 맛이 가기 쉬운 생선인지라 초 처리를 한 뒤 초밥 재료로 사용한다.] [[메이지 시대]] 중기 이후로 얼음의 입수가 쉬워지자 날생선의 맛에 길들여진 도쿄 사람들 취향에 맞추어 네타는 간장에 절이거나 적당히 가열처리하고, 초처리는 밥에만 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었다. 다만, 하야즈시부터 일어난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에도 도심지역에서만 일어난 것이고, 일본 타 지역에는 생선 보존식으로의 옛 모습을 간직한 향토 스시가 지금도 많이 남아있다. 따라서 이렇게 발효 없이 식초를 사용하고, 틀 대신 손으로 쥐어 주는 스타일의 스시는 '''에도마에'''(江戸前) 스시라고 따로 부르게 된다. '에도 앞바다'에서 나는 어물로 가공한 재료로 만든다는 뜻. 스시의 원조는 메콩강 유역일지 몰라도, 니기리즈시의 원조는 [[도쿄]]인 셈. 발효식품의 풍미가 약해진 것은 초밥의 매니악함을 많이 줄여서 초밥 문화를 융성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도쿄의 니기리즈시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일본 전역을 석권해서, [[메이지]] 중기에는 하코즈시의 원고장인 [[오사카]]에서도 대부분의 초밥집이 니기리즈시집으로 바뀌어 버렸다. 지금은 일본에서도 지금은 스시라고 하면 당연히 주먹초밥(니기리즈시)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서양인들은 초밥이라고 하면 캘리포니아 롤과 같은 변형된 마키즈시를 먼저 떠올린다.] 유통 기술의 발달 및 냉장고의 등장으로 발효식품의 입지가 줄어드는 현대인의 식문화를 감안했을 때, 초밥이 옛날 방식대로 남았다면 세계화는 고사하고 자국에서조차 쇠퇴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로 외국인이 가장 마지막까지 어려워하는 초밥 네타는 식초에 절이는 등푸른 생선류이며,[* 이 쪽은 산패가 너무 빨라서, 식초에 절이지 않으면 [[히스타민]]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갈 수 있다.] 전통적인 나레즈시를 즐기는 일본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설득력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domaevscrop.png|width=100%]]}}}|| ||<:>{{{-1 현대의 초밥(왼쪽)과 에도 시대 초밥(오른쪽)의 크기 비교.[* 사진 속 네타의 재료는 어린 전어로, こはだ(코하다)라고 불린다. 전어의 일본어 표기는 어종 자체로 (성체)전어를 뜻하는 鮗(このしろ)(고노시로)가 있지만, 스시에 쓰이는 전어는 주로 10 cm 이하의 어린 전어 小鰭다.][* 일본에서는 어류의 성장단계와 크기에 따라 명칭을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때 出世魚(しゅっせうお)(출세어)라고 한다. 전어, 방어 등이 성장단계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전어의 출세어 명칭은 싱코(新子) 5cm 이하, 코하다(小鰭) 10cm 이하, 나카즈미(中墨) 13 cm 이하, 코노시로(このしろ, 子の代) 15cm 이상.]}}} || 에도마에 스시가 현대의 스시와 완벽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 '에도마에 스시' 또는 '에도마에식' 이라고 하면 니기리즈시가 발생한 19세기 중반부터 [[2차대전]] 종전 전까지 100여년간 도쿄에서 유행하던 형식의 니기리즈시를 일컫는 것이며, 세계인들이 생각하는 현대 스시와는 조금 다른 점들이 있다. 일단 크기부터가 다른데, 에도마에 스시는 한 끼 식사로 먹던 것이기 때문에 네타도 매우 두껍고 밥도 많으며, 식사용답게 따뜻하고 찰기가 넘치는 밥을 쓴다. 즉, 초밥이라기보단 생선을 얹은 최소 두 입 크기의 주먹밥에 가깝다. 이 주먹밥과 같은 초밥을 좀 먹기 쉬우라고 서빙하는 차원에서 반토막을 내어 주었는데, 이것이 초밥을 주문하면 2피스씩 나오는 관습의 유래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이것이 [[회전초밥]]에도 적용되었다.[* 다만 회전초밥은 참치 뱃살 같은 고가의 초밥은 접시당 1피스다. 회전초밥은 접시당 가격이 높아야 500엔(5천 원 남짓) 정도이기 때문.] 또한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네타(초밥 위에 올라가는 재료)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일'''이라는 밑작업을 했는데, 오징어/대합/새우와 같은 갑각류 같은 재료는 데치고, 참치는 간장에 절이고, 히카리모노는 소금에 절인 뒤 식초절임을 무조건 하고, 붕장어인 경우 익힌 뒤 소스를 바르는 등, 어떻게든 가공에 가까운 조리를 했다. 제대로 '일'을 하는 가게에서는 원래 찍어먹는 간장이 제공되지 않았으며, 노점에서 파는 스시에서만 간장이 제공되었다고. 에도마에 스시의 전통을 제일 고수하기로 유명한 '벤텐야마 미야코'라는 [[https://www.bentenyama-miyakosushi.com/%e3%81%8a%e5%93%81%e6%9b%b8%e3%81%8d/|초밥집의 메뉴]]를 보면 생 재료들이 [[치라시즈시]]나 [[사시미]]로는 제공되더라도 쥠초밥으로는 거의 올라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네타의 종류 또한 도쿄 앞바다에서 나던 것으로 한정된다. 에도 시대 스시야에서는 [[갯가재]]나 [[대합]], [[박(식물)|박고지]], [[오이]], [[낫토]]처럼 타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궁상맞은 재료들이 주연으로 등장했지 [[연어]]나 [[성게]][* 둘 다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식재료로 취급한다.] 초밥 같은 것은 취급하지 않았다. 참치도 먼 바다에서 잡아온 생선이기 때문에 생으로는 먹을 수 없었으므로 간장절임인 즈케로 제공했다. 다만 성게와 생 참치 등의 재료는 오늘날의 초밥 코스에서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고급 재료들인지라, 에도마에를 표방하는 스시야라 하더라도 쥐어주는 가게가 많다. 상기한 벤텐야마 미야코도 최근에는 뱃살류를 제공하면서 타협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