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야권 (문단 편집) === 몽골 === 원대(元代) 몽골인들이 한족에게 초야권을 행사했다는 설은 사실상 루머 취급을 받으며 주류 학계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나무위키를 포함하여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몽골 초야권설 대부분은 주장만 있을 뿐 명확한 학술적 근거가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일례로 본 문서의 반론에서는 몽골의 초야권이 "역사적 사실"임을 강변하지만, 근거로 제시한 사료는 전무하다시피 하며 사건들 간의 인과관계 또한 지극히 모호하다. 이들의 주장은 후술할 《신여록》같은 위서(僞書)나 민담 등 신뢰할 수 없는 자료를 바탕으로 과장ㆍ날조한 [[유사역사학]]에 해당한다. 초야권 설은 야사(野史)에 해당하는 《신여록(燼餘錄)》이란 문헌에 처음 등장하였지만 근대 학자들에 의해 《신여록》은 위서(僞書)로 판명되었고, 몽골의 잔혹성을 입증하기 위해 원대 역사를 왜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李則芬《明人歪曲了元代歷史》,《文史雜考》,1979年.) [[https://zh.m.wikipedia.org/wiki/%E7%83%AC%E4%BD%99%E5%BD%95#|#]] 정사(正史)인 [[원사(역사책)|《원사(元史)》]], [[신원사|《신원사(新元史)》]] 등에는 초야권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송사]],[[원사]],[[명사]]같은 정사들은 그 왕조를 멸하고 세운 새로운 왕조가 편찬하는 것이지 해당 왕조가 편찬한 것이 아니다. 즉 원나라에 실제로 초야권이 있었다면 원나라를 멸하고 세운 명나라가 원나라를 깎아내리기 위해서라도 원사에 초야권을 기록했을 것이다.] 청말민초(淸末民初)에 출간된 민속학자 저우쭤런(周作人)의《담룡집(談龍集)》 등 초야권과 관련된 민담, 풍습을 다룬 산문집과 그 영향을 받은 일부 대중역사서들로 인해 실제 초야권이 실시되었다는 루머가 퍼진 적도 있지만, 현재는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부정되고 [[https://www.gushiciku.cn/dl/02j1a/zh-tw|#]] [[https://3g.163.com/dy/article/GMS3KAM50552AU0G.html?spss=adap_pc|#]] [[바이두 백과]] 초야권 항목 [[http://baike.baidu.com/l/OM0yYknK?bk_share=copy&fr=copy#|#]] 이나 [[중국어 위키백과]] 초야권 항목 [[https://zh.m.wikipedia.org/wiki/%E5%88%9D%E5%A4%9C%E6%AC%8A|#]] 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바이두 백과 초야권 항목에는 百科TA说로[* [[https://baike.baidu.com/item/%E7%99%BE%E7%A7%91TA%E8%AF%B4/19864595|百科TA说]]는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바이두 백과 운영진이 전문가, 학자, 기관 등에게 작성 권한을 제공하는 항목이다.] 원대 초야권의 허구를 상세히 입증하는 글이 링크되어 있다.[[https://baike.baidu.com/tashuo/browse/content?id=caaff993a0f60288ab739497&lemmaId=2375512&fromLemmaModule=lemmaContent|《“蒙元初夜权”,一个历史谣言的原型、变形与事实。 》]] 원대 초야권이 실시되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현대 중국의 언론인 중 신리지엔(信力建)이란 인물이 있으나 신리지엔은 중산대학(中山大学) 중문과를 졸업하였을 뿐 역사학 관련 학위가 없는 비전문가이며[[https://baike.baidu.com/item/%E4%BF%A1%E5%8A%9B%E5%BB%BA/3671624|#]] 그의 주장들 역시 앞서 언급한 《신여록(燼餘錄)》같은 위서나 《담룡집(談龍集)》 같은 민담에 근거하여 신뢰도가 매우 낮다. 초야권설이 유포된 배경에는 [[원나라|원(元)]]과 원을 계승하여 몽골의 대칸을 자처한 [[청나라|청(淸)]] 등 전대(前代) 이민족 왕조에 대한 한족 지식인들의 반감이 존재한다. 이들의 역사관은 이른바 "원청비중국론(元清非中國論)" 혹은 "만몽비중국론(滿蒙非中國論)''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이란 이데올로기를 따라 원, 청도 중국 왕조 중 하나로 인식하는 현대 중국의 [[중화사상|중화주의적]] 역사관이 강화되면서 중국인들이 굳이 근거 없는 초야권 설로 원나라를 비하하고 [[한족]] 스스로를 치욕스럽게 만들 이유도 사라졌다. 또한 인터넷상에는 외몽골 같은 일부 티베트 불교권 지역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승려가 초야권을 행사하여 [[매독]](syphilis) 감염의 주요 경로가 되었다는 출처 불분명한 주장이 있다. 근현대 몽골에 매독이 창궐했던 것은 사실이나 매독이 유행하게 된 원인은 분명치 않다. 청이 몽골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매독, 임질 등 성병에 감염된 죄수를 일부러 몽골에 유배보냈다는 설, 마을의 우물에 매독균을 풀었다는 설, 초야권을 행사하는 승려들을 통해 매독을 전파했다는 설 등 다양한 주장이 있으나 모두 불확실한 추측성 루머에 해당한다. 불교학자 바차이칸 노로브(Batsaikhan Norov)에 따르면 몽골의 인구 밀집 지역에서 매독이 전파된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당시 몽골의 상당한 비혼(非婚)인구 비중이다. 비록 청 왕조가 불교 전파를 지원했지만 몽골의 각 구역 당 단지 40명의 남자만 출가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법령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제한은 점차 효력을 잃고 총 승려 수는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1918년까지 승려 수는 105,577명으로 칼카(Khalka) 몽골 남성 중 거의 절반(44.5%)에 이르렀다. 이 시기까지 내몽골에는 1600여 개에 달하는 사원과 10만 여명의 승려가 존재했다. 비구계를 받은 승려는 결혼을 할 수 없기에 상당한 수의 몽골 여성 또한 비혼으로 남아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가볍고 혼외(婚外)적인 성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낮은 개인 위생 또한 감염 전파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전염병에 대한 지식과 전염병 예방을 위한 의학적 치료 및 노력은 부족했다. 성병(性病)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몽골의 문화도 감염된 환자가 의학적 치료 받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티베트 불교]] 학승(學僧)들은 17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몽골에서 대유행했던 [[천연두]], 매독같은 감염병의 예방에 기여하였다. 이들은 사부의전(四部醫典, gso dpyad rgyud bzhi)에 기초한 티베트 불교 의학과 티베트, 몽골, 중국의 전통의학이 결합된 자신들의 의학지식을 활용하여, 청의 군인과 상인들을 통해 유입된 감염병들의 예방법과 치료법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들은 질병 퇴치를 위한 종교적 의식을 행할 뿐 아니라 홍분(紅粉), 경분(輕粉), 주사(朱砂) 등 당시 매독의 유일한 치료법이었던 수은이 포함된 약재들을 치료에 활용하였다(이들은 신장 질환같은 수은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감염자 및 감염 매개물을 격리하는 한편 위생 증진을 위한 생활수칙과 마늘, 유황, 사향 등의 약재를 활용한 소독법 등을 연구하였다. [[https://doi.org/10.3390/rel10040229|Batsaikhan Norov (2019), 《Mongolian Buddhist Scholars’ Works on Infectious Diseases (Late 17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또한 캠브리지대 사회인류학과의 바산자브 테르비쉬(Baasanjav Terbish)는 딴뜨리즘의 성력(性力) 수행만으로는 몽골 승려들의 성생활을 설명하기 힘들다고 보았다. 딴뜨리즘의 성력 수행은 범속한 성행위와는 달리 열반을 성취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근기를 갖춘 극소수 수행자에게만 허용된 고도의 수행 방식이기 때문이다. 테르비쉬는 세속 사회와의 근접성과 사원의 경제활동에도 주목하였다. [[https://cambridge.academia.edu/BTerbish|Baasanjav Terbish (2013), 《Mongolian Sexuality: A Short History of the Flirtation of Power with Sex》]]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