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장왕 (문단 편집) == 관련 어록 == 초 장왕 17년(기원전 597년), 초나라가 정(鄭)나라를 쳐 굴복시키자, [[진문공]](晉文公) 이후 중원의 패자를 자처하던 진(晉)나라가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진나라는 필(邲) 땅에서의 전투에서 초나라에 크게 패배하였다. 초장왕이 정나라 땅 형옹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을 때, 신하 반당이 말했다. >“임금께서는 어찌 병장기들을 끌어모아 쌓고 진나라 군의 시신을 거두어서 경관(京觀, 승전 기념의 큰 무덤)을 만들지 않습니까? 신이 듣기로는, 승전을 하면 반드시 자손이 그 무공을 보고 잊지 않도록 한다고 합니다.” 이에 초장왕이 말했다. >“잘 모르는 소리다. 글자를 봐라. ‘武’(무)자는 ‘止’(멈출 지)와 ‘戈’(창 과)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 무릇 '''武(무)의 7덕'''은, '''금폭'''(禁暴, 폭력을 금함), '''집병'''(戢兵, 무기를 거두어 보관함), '''보대'''(保大, 큰 나라를 유지함), '''정공'''(定功, 세상을 평정하는 공을 세움), '''안민'''(安民, 백성을 편안히 함), '''화중'''(和衆, 세상 사람들을 화합시킴), '''풍재'''(豊財, 재물을 풍성하게 함)에 있다. 그래서 자손이 그 가르침을 기억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두 나라 병사들의 뼈가 들판에 흩어지게 하였으니, 그것은 '폭'(暴)이다. 무력을 과시하여 제후들을 위협하였으니 폭(暴)하되 '집'(戢, 무기를 거둠)하지 못하였고, 그러니 어찌 큰 나라를 '보유'(保大)할 수 있겠는가. 진나라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어찌 세상을 평정한 '공'(定功)을 세웠다 할 수 있겠는가. 백성들이 바라는 것에 거스른 것이 이미 많거늘 백성들이 어찌 '편안'(安民)할 수 있겠는가. 덕이 없으면서 제후들과 강함을 다투었으니 무엇으로 세상을 '화목'(和衆)하게 할 수 있겠는가. 남의 위태로움을 나의 이익으로 여기고 남의 환난을 나의 평안으로 삼아 내 영화를 누리고자 하니 어찌 재물을 '풍족'(豊財)히 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무(武)의 7덕 중 나는 한 가지도 가진 게 없는데 무엇을 자손에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저 선대 왕을 모시는 사당을 지어, 전쟁에 이겼음을 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무(武)는 나의 공적이 아니다. 옛날의 밝은 왕들은 불경한 자들을 토벌하여 그 우두머리를 죽여 땅에 묻고 흙을 쌓아올려 큰 치욕을 받게 하였다. 그런 일로 경관(京觀)이 만들어져, 불의하고 부정한 무리들을 징계한 것이다. 지금 진나라는 죄로 삼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았고, 백성들은 모두 충성을 다해 그 군주의 명에 따라 죽었으니, 내가 어찌 그들을 구경거리 무덤(京觀, 경관)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초장왕은 황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선군의 사당을 지어 전승을 고한 후 초나라로 돌아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