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촉한 (문단 편집) === [[촉한정통론]] === 후한을 계승한 촉한에 정통성이 있다는 평가다. 정통성은 전 왕조에 기준을 두는 만큼 비록 세력은 작았으나 한을 계승한다는 명분이 충분했던 촉한에 정통을 두는 논리다. 마찬가지로 동진과 바로 이어지는 남조 또한 북조에 비해 세력이 작고 마지막 왕조인 진이 북조에서 나온 수에게 멸망당했음에도 남조를 정통으로 인정하려는 논리가 있는 것처럼 정통성에 대해 세력보다는 전 왕조와의 연결성에 더 큰 비중을 두어 촉한 정통론이 생겨난 것이다. 사실 유송 때 유유가 많이 밀었다. 한나라의 계승자는 오직 자신들의 형제인 촉한뿐이고 서진이나 위는 역적이라는 것. 사실관계야 어찌 됐건 위나라에 오랫동안 황제가 생존해 있었던데다가 위나라 내에서 후계자에 대해 별 언급도 없었고, 유비는 한왕조의 후계는 맞으나 정통성을 논할정도로 연결점은 없었으므로 촉한정통론을 주장하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촉한정통론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헌제의 확보가 우선으로 이뤄져야 했으나 실패했다. 이러한 촉한정통론의 약점은 위나라가 체계를 갖추고 대세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으나 결국 점점 형세가 불리해짐에 따라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촉한정통론에 의하면 위나라와의 어중간한 타협따위는 불가했고, 오와의 협력에 있어서도 결국 촉한은 한나라의 유일한 계승자임을 국가이념으로 하기 때문에 불리하기 짝이 없었다. 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이런저런 논의가 이뤄졌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오와 촉은 늘상 서로를 경계하였고 이는 이릉대전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끊임 없는 전쟁으로 인해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사망하고, 적통인 헌제가 위에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기에 촉한정통론은 인재 영입의 측면에서도 딱히 영향을 주기 어려웠다. 결국 위나라가 장악한 중앙의 영향력을 통해 위나라의 인재풀이 촉한과 오를 압도하기 시작했고, 촉은 위나라를 상대로 몇 번이나 전쟁을 걸었으나 결과는 촉한의 멸망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