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촉한 (문단 편집) === 성격 === >'''흩어진 군졸들'''을 거두어 동쪽으로 가서 광릉(廣陵)을 차지하고 원술과 싸웠으나 또 패했다. >---- >[[진수(역사가)|진수]], 『[[정사 삼국지]]』, 선주전(先主傳)[* [[http://rexhistoria.net/index.php?_filter=search&mid=history_sam&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C%84%A0%EC%A3%BC%EC%A0%84&document_srl=1289|출처: 파성넷]]] >장차 패(沛)로 가서 '''흩어진 군졸들'''을 거두려 하자, >---- >[[진수(역사가)|진수]], 『[[정사 삼국지]]』, 선주전(先主傳)[* [[http://rexhistoria.net/index.php?_filter=search&mid=history_sam&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C%84%A0%EC%A3%BC%EC%A0%84&document_srl=1289|출처: 파성넷]]] >한 달 남짓 지나자 '''흩어져 달아났던 사졸들'''이 점차 모여들었다. >---- >[[진수(역사가)|진수]], 『[[정사 삼국지]]』, 선주전(先主傳)[* [[http://rexhistoria.net/index.php?_filter=search&mid=history_sam&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C%84%A0%EC%A3%BC%EC%A0%84&document_srl=1289|출처: 파성넷]]] 당대의 군은 [[부곡]]이라고 하여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뭉친 세습 군사 집단을 기반으로 이루었는데, [[유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으로 유비가 이끈 군대는 다른 세력에서 얻었거나 어떤 세력의 잔존병들을 규합해 모은 경우가 많았다. 처음 군사적으로 발흥한 때에도 공손찬 휘하에서 병사 천여 명과 유주의 오환족 기병을 이끌고 있었고, 도겸에게서 단양병 4천을 받았던 것도 확인된다. 그러나 유비는 일생의 대부분을 각지를 떠돌아다녔으므로 정확한 병력이나 휘하 군사 집단의 특성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촉군이라 일컬어지는 대상은 바로 형주와 익주의 군세가 결합된 시기부터인 것이다. 위서 문제기를 보면, [[이릉대전]] 때 병력이 4만인데 마필(馬匹)은 고작 2, 3천 필에 불과했다고 나온다. 말은 수송이나 운송에도 이용되었으므로, 기병(騎兵)은 본질적으로 훨씬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갈량의 남만 정벌로 유명한 운남 지방에서 소수나마 군마로 쓰기 좋은 말이 나왔기에 기병을 키울 기반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량주나 병주, 유주 같은 북방 지역의 군마 생산력을 따라갈 수준은 아니었다.] 따라서 촉은 위의 대규모 기병대에 맞서려고 [[팔진도]] 같은 보병 전법을 극대화하였다. || [[파일:D79QPK_VsAA2dbG.jpg|width=600]] || || '''[[제갈량의 북벌]] 때 촉병의 모습''' || 촉한은 방호구와 병장기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는데, 촉한의 대장장이 [[포원]]은 야금술을 발전시켜 튼튼한 [[갑옷]]과 [[투구]], 또 신도(神刀)라는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또 [[제갈량]]은 원융노라고 불리는 십시[[연노]]를 개발하여, 『화양국지』에 따르면 힘 좋은 병사 3천을 뽑아 연노사로 삼았다. 화살은 쇠로 만들고, 그 길이가 8촌이었는데 한 번에 10발씩 쏠 수 있었다고 한다. 군사 전문가들의 고증에 따르면 전술한 팔진도와 운용이 반드시 배합하였다.[* 출처 필요함.] 또 [[목우유마]]를 개발한 것도 유명하다.[* 다만 사서에는 "'''목우로 운송했는데, 군량이 다해 군이 퇴각했다.'''"라는 내용이 나와 있어 그렇게 기발한 발명품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갈량이 이끄는 군세는 정돈되어 가지런하고, 상벌이 엄숙하며 호령이 분명했다고 전한다. 이로 보아 제갈량은 쪽수의 불리함을 질적 차이로써 이겨내고자 했던 것 같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