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촉한 (문단 편집) ==== 정책 ==== 생산력이 풍부하고 방어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형 덕분에 난세 때마다 파촉을 근거지로 독립 세력이 들어섰으나, 중국의 중심은 늘 [[중원]]이었고, 따라서 중원이 안정된다면 변방 지역에 불과한 파촉은 절대적인 열세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방어에 유리하다는 것은 그만큼 고립되었다는 뜻으로, 영향을 확장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따라서 한실 부흥을 국가적 명분으로 삼았던 촉한은 끊임없이 대외 팽창을 꾀했다. [[한중공방전]]을 필두로, [[제갈량의 북벌]] 다섯 번이 있었는데 [[위연]]은 더욱 더 빠르고 공세적으로 나아가고자 [[자오곡 대책]]을 내놓기도 하였다. [[강유]]는 일곱 번이나 출정하였는데, 단곡 전투에서 패배한 뒤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군사 활동이 방어를 기준으로 재편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