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동원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2>[[파일:OgLrxUs.gif|width=100%]]|| || [[파일:j46qf8e.gif|width=100%]] || [[파일:Q80pzt0.gif|width=100%]] || ||<-2> [[커브볼|특유의 폭포수 커브]] || || [[파일:J2kWzPp.gif|width=100%]] || [[파일:gDYEDp3.gif|width=100%]] || || [[패스트볼|투심]] || [[슬라이더]][* 투심과 슬라이더의 영상은 지칠 대로 지쳐있던 한국시리즈 7차전 영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투구폼이 상당히 무너져 있는 것을 볼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라이더는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저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게 슬라이더야, 커브야?"라고 할 정도로 종으로 떨어지는 정도가 이미 한국프로야구 평균을 넘어섰다.] || || [[파일:9vsDmaB.gif|width=100%]] || [[파일:ZClL1TN.gif|width=100%]] || ||<-2> [[스플리터|스플리터성 역회전 공]], 본인은 떨어지는 공이라고 부른다. || ||<-2> [[파일:attachment/f0018015_4e75c8af9bbae.jpg|width=100%]] || 주 구종은 패스트볼과 커브였다. 당시 스피드건이 보급되지 않아 정확한 구속자료는 찾기 어려우나 80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야구 선수권에서 최고구속 ''145km''를 던져 일본언론에서 쾌도난마의 공이라고 표현하며 관심을 가졌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 직구 평균구속이 130km대 중반 정도였음을 생각하면 대단한 강속구였다.] 커브또한 각이크고 예리해 콜롬비아 전때는 파인타르를 발랐다는 의심을 사기도 할 정도 였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0090100209208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9-01&officeId=00020&pageNo=8&printNo=18126&publishType=00020|당시기사]] 최동원의 투구폼은 용틀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역동적이었으며, 구위에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적인 투구를 했다. 그것은 일본의 선진 야구를 배우게 한 아버지의 덕이 컸었다.[* 최동원 선친은 본래 소싯적에 축구에 재능이 있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고, 그 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잃은 아픈 기억을 안은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뒤로는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아들의 성장을 위해 헌신했었고, 구설수에 휘말린다 싶으면 "모든 욕은 내가 먹겠다"고 하며 아들을 감쌌다.] 부산에서 시청 가능하던 일본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의 투구폼을 아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최동원의 전매특허인 드롭[* 낙차 큰 커브.]이 바로 호리우치의 주무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적인 투구 성향으로 인해 피홈런율은 상당히 높았다.[* 인터뷰를 보면 정말 대단한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홈런을 맞으면 다음 상대 때 다시 똑같은 코스에 던져서 "칠테면 쳐봐라. 이번에도 또 치면 넌 실력이었고 못 치면 운이 좋아서 네가 쳤을 뿐이다."라는 마인드를 가졌었던 게 나온다. 홈런을 허용하고도 호탕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https://m.sports.khan.co.kr/view.html?cat=view&art_id=201109152214163&sec_id=510201&pt=nv#c2b|통산 고의사구가 15개밖에 안 된다.]] 1년에 2개도 안 던진 셈. 정말로 공격적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