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석준(독립운동가) (문단 편집) == 생애 == 최석준은 1891년 10월 1일 평안도 삭주군 내동면 대대동(현 평안북도 삭주군 대대노동자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립유공자]] [[최석순]]의 친동생이며 [[개신교]] 신자였다. 1919년 2월 고종의 국장일에 참례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가 [[3.1 운동]]을 접한 뒤 귀향하여 4월에 삭주, 창성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만주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한족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20년 5월 14일, 최석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 삭주군 경감(警監)에 임명되어 [[안영호(독립운동가)|안영호]]·강종문(姜從文)·김서준(金瑞俊)·김정로(金定魯)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또한 동년에 광복군총영원(光復軍總營員)으로 김익준(金益俊)·[[박준모]]·김봉한(金鳳漢) 등과 함께 국내에 진입하여 밀정처단 주재소 습격 등 무장항일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1년 이륭양행의 선편으로 임시정부에 다녀오는 길에 안동현에서 체포되어 의주로 압송되었고, 1921년 10월 14일 밤 의주서에서 동지 이호영(李浩英)이 모진 고문을 당하는 것을 보다 못하여 경찰과 난투극을 벌이다 이호영과 함께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최석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68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