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순실 (문단 편집) === 파멸적인 인사관리 === 비록 최순실 본인이 정치적 능력이 없다고 해도 적절한 인사를 배치했다면 어느 정도는 무마할 수 있었다. 최 씨 본인도 자신이 국정관련 보고서를 접한다고 해도 해당 사안을 검토하거나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을 추척해 온 주진우 기자가 밝힌 바에 의하면, 최순실 주변 사람들 중 아무도 최순실이 한 권의 책이라도 읽는 걸 보지 못했다고 한다. [[http://todayhumor.com/?sisa_773654|#]] 국정 운영 능력은커녕 기본적인 교양도 의심받는 셈.] 때문에 당시 비선국정 운영은 최순실 본인에게 보고서가 오면 그걸 자기 주변 사람들한테 조금씩 나눠준 뒤 적당히 지시만 내리면, 주변과 박근혜 휘하 인사들이 알아서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사실상) 최종 결정권자인 최순실 본인에게 정치적 정당성이 있기는 커녕, '''[[최태민|사이비 교주의 딸이자]] [[졸부]] 아줌마'''로서 정치가들이 가질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로 인해 자신과 직접 접촉하는 핵심인사는 [[고영태]]나 [[차은택]]과 같이 약점을 잡기 쉬운 개인적인 사람이거나, [[문고리 3인방]], 혹은 권력욕에 눈이 멀대로 멀어 비선조차 눈 감아줄 수 있는 부패한 정치인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모두 실질 국정 운영 능력 및 경험 수준은 바닥을 길 수밖에 없었고 최순실 일가의 국정사유화를 은밀히 추진하려다 보니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김기춘|왕년의 법꾸라지]] 하나 추가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니까 [[박근혜 정부]] 당시 대부분의 실정이 일어난 이유는 최순실 주변 사람들의 열악한 능력 때문이었다. 한국의 외교 정책이 어떤 때는 중국 [[열병식]]에 참가하고 [[AIIB]]에 가입하는 등 [[친중]]으로 가다가, 얼마 후에는 돌연 일본과의 위안부 졸속 협상을 맺고 국민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일본과의 정보 공유 협정을 강행하는 등 [[친일]]로 가는 식으로 오락가락했고, 경제와 문화는 [[창조경제]]라는 간판만 내려놓고 우왕좌왕한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