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양락 (문단 편집) == 개그맨 이력 == [[서울예전]] 연극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1년]] 제1회 MBC 개그 콘테스트에 참가하여 당당히 대상을 수상[* 최양락이 대상을, [[엄영수]]가 금상을, [[김보화]]가 장려상을, [[이경규]]가 인기상을 수상했다.]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b_4RPwbHyVU|녹음본]][* '직업에 있어서의 시간과 공간'이란 제목으로 출전해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는 이번 콘테스트에서 직업에 따라 권투 경기 등을 보는 각도가 다르다는 점을 소재로 채택했다. 마지막 대상 수상자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잠시 동안 무대에서 정신을 잃는가 하면 트로피를 받아들자마자 눈물을 쏟던 그는 "국민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가르쳤던 모든 담임선생님들께 이 기쁨을 전하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1060300329212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1-06-03&officeId=00032&pageNo=12&printNo=10976&publishType=00020|#]]] 그러나 당시 MBC에서는 대선배이자 레전드였던 [[구봉서]], [[서영춘]]이 아직 현역으로 활동 중이었고, 최양락은 대상을 받은 기대주였음에도 방송연기에 적응을 실패하는 바람에 MBC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전혀 내지 못했다. 그 즈음 경쟁사였던 KBS에서 이적을 제의받고 같이 입사한 [[엄영수]], [[이상운]]과 같이 KBS로 방송사를 옮겼다.[* MBC의 모 PD가 대상을 받았음에도 활약은 커녕 짧은 대사도 제대로 치지 못하는 최양락을 보고는 “MBC가 눈이 삐었지, 어떻게 1기 대상을 저런 놈한테 줬지?’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전성기가 끝난 2010년, 2020년대와 유사하게 웃기는 능력 하나는 좋았지만 그때도 방송 트렌드에 적응을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MBC입사 동기이자 절친한 사이인 [[김정렬(코미디언)|김정렬]]은 최양락의 이적에 대해 스카우트가 아니라 MBC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양락과 반대로 그의 선배 [[주병진]]은 KBS(원래는 [[동양방송]]에서 데뷔했는데 언론통폐합에 의해 KBS로 간 것)에 출연하다가 MBC로 이적했다.] 이후 대부분의 활동은 KBS에서 했으며 KBS에서 활동하는 동안 [[쇼 비디오 쟈키]]나 [[유머 1번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촐랑거리고 깐죽대는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는데[* 어설프면서도 애교스런 개성적인 연기로 중·고등생 등 10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62100329216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6-21&officeId=00032&pageNo=16&printNo=13147&publishType=00020|#]]]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네로 25시'의 네로, '고독한 사냥꾼'의 최우빈, '괜찮아유'의 최종학[* 보통 이름은 거의 불리지 않고 그저 양랙이 아부지로 불린다. 참고로 최종학은 실제 최양락 부친의 성함이다.] 등이 있다. 치킨 브랜드 [[페리카나]]의 [[http://www.youtube.com/watch?v=wE4QOcpEvlY|광고 모델과 노래]]로도 유명했다. 대표적인 유행어는 부인이자 같은 코미디언인 [[팽현숙]]과 같이 호흡을 맞췄던 코너 '남 그리고 여'에서 만든 '''"있을 때 잘해! 나는~ 봉이야!"''', 고독한 사냥꾼의 "내가 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 때문이지"(오프닝) / "에구에구... 그날 난 (당했다) 됐다."(엔딩), 네로 25시의 "오, 신이시여~~~!!" 가 있다. [[1984년]] 발매된 [[심형래]]의 코믹 캐롤이 성공한 후 코미디언들이 앞다투어 코믹송 앨범을 발표했던 시기에 최양락도 앨범을 냈다. 바로 '최양락 작품하나' [[1988년]]에 발매된 앨범으로 최양락이 만화 주제가를 자기식으로 부른 곡들로 채워져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eFQAqKmW3VU|최양락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직접 앨범을 홍보하는 영상]][* 해당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이 앨범의 유일한 오리지널 곡 <귀염둥이 철민이>로 유머 일번지의 코너 중 하나인 "남 그리고 여"의 캐락터 송이다.] 이 앨범은 '''대박이 났다.''' 최양락은 이 앨범을 100만장 팔았다고 밝힌바 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2/2016011203670.html|관련 기사]][* 위 기사에서는 앨범 4장을 냈다고 밝히고 있는데, 나머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네로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네로 25시 팀이 부른 것이 있고, 꺼꿀이와 장다리라고 해서 코미디언 [[김정식(코미디언)|김정식]]과 부른 것이 있다.] 페리카나의 치킨 광고도 이 앨범에 수록된 [[요술공주 샐리]] 주제가를 사용한 것이다. 최양락은 2009년에 위 앨범을 다시 리메이크해서 [[http://www.mnet.com/album/173788|최양락 Night Fever!!!]]라고 다시 발매했다. 이 앨범은 그리 잘 되지 못했지만 음악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가 많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411145.html|한겨레 기사]]. 극중에서는 [[임미숙]]과 부부로 엮이는 경우가 많았으나, 실제로는 [[팽현숙]]과 결혼한 사이다.[* 팽현숙과는 고독한 사냥꾼, 남 그리고 여에서 커플로 출연했고, 임미숙과는 네로 25시에서 황제와 황비로 출연했다. 덕분에 [[배우개그|이를 이용한 개그]]도 곧잘 써먹었다.] 임미숙은 반대로 [[김학래]]와 부부 사이다.[* 원래 동료 개그맨 [[조금산]]이 임미숙을 짝사랑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미숙은 최양락과 같이 네로 25시에 메인으로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은 반면 조금산은 그냥 그저 그런 개그맨이였다. 조금산이 임미숙에게 접근한 시도는 본의 아니게 김학래와 임미숙을 연결시켜 준 꼴이 되었고, 결국 그 둘이 결혼하기까지 하면서 조금산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꼴이 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9&aid=0002921063|#]]] 김학래와 동기라서 최양락과 김학래 둘이 자주 콤비로 나서기도 했다. 실제로 꽤 친한 사이라고... 참고로 나이는 김학래가 8세 위다.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이 이뤄지게 된 첫 계기는 최양락의 아버지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최양락은 함께 개그를 하면서도 팽현숙을 후배로만 대한데다가 연습할 때도 합이 안 맞는 경우가 많아 욕을 무지하게 해서 팽현숙이 삐치거나 혼자 운 적이 많았다고 한다. 최양락은 이런 모습에 관심은커녕 "현숙이 쟤는 부족하면 열심히 해야지 맨날 섭섭해하기만 하고 개그가 발전이 안 되는데 왜 저러냐"고 생각하여 오히려 불만이 더 많았었다고... 어느 날 시골에서 부모가 올라왔는데 혼자 사는 최양락을 보고는 안되겠다며 결혼을 재촉했다. 이에 최양락이 "아버지, 여자가 있어야 결혼을 하죠"라는 대꾸하자 아버지 왈, "너 왜 멀리서 찾니? 너랑 같이 일하는 현숙이라는 애, 아빠가 관상을 보니까 괜찮아. 오늘 당장 가서 유심히 한 번 봐봐라." 이에 최양락도 팽현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면서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가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일화는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같은 코너를 하고 있던 최양락이 먼저 팽현숙에게 고백을 했고, 팽현숙이 거절하자[* 팽현숙이 훗날 방송에서 본인 이전에 최양락이 교제한 여성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선배였던 최양락이 후배인 팽현숙에게 쌀쌀맞게 대했고 그 것을 견디지 못한 팽현숙이 최양락의 고백을 수락했다는 버전도 있고 최양락과 팽현숙이 사귀게 되자 최양락이 의도적으로 둘의 연애 사실을 기자들에게 흘려서 기사가 났다는 버전도 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대해 주변의 시선이 관대하지 않았고, 특히 여자 연예인은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열애설이 퍼지면 진짜로 결혼까지 가지 않으면 이미지에 타격이 컸다. 그래서 몇몇은 이런 점을 악용, 일부러 적당히 소문을 낸 후 협박 아닌 협박으로 여성과 강제결혼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서세원]]과 [[양원경]]. 하지만 팽현숙이 훗날 밝힌 내용상 서세원이나 양원경의 케이스와는 다르고, 최양락한테 당한 걸로 보기 어렵다. 본인이 최양락에게 요구해서 데뷔 2년만에 최양락의 결정[* PD가 반대하는데도 최양락이 팽현숙을 주연으로 해야한다고 우겼다. 과거 전유성의 명령으로 팽현숙에게 찾아가 개그우먼 시험볼 것을 요구한게 최양락이었기 때문에, 데뷔 후 코너 주연을 못하여 화가 난 팽현숙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고 팽현숙에게 독촉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으로 코너 주연을 맡으며 개그인생이 잘 풀린 것이고, 그 이후에 팽현숙이 해외촬영 후 귀국길에 최양락에게 줄 선물을 샀고, 그걸 본 선배 [[전영록]]이 최양락을 괜찮은 남자로 생각해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했기 때문이다. 최양락이 팽현숙에게 "이제부터 진짜 사귀는거다."라고 선언한 것도 팽현숙이 선물을 사다 주자 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강요로 무언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부 사이도 대체적으로 상당히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내 [[팽현숙]]과의 연애 시기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창 팽현숙과 연애하던 때에 아는 기자에게 딱 걸려서 연애 기사가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결혼 확정도 아니니 신상 보호 좀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정 쓸거면 "최양락 모 후배와 열애설!!" 요 정도까지만 쓰라고 했는데, 다음날 신문에 난 기사 제목이 '최양락, 동료 개그맨 '''팽 모 후배'''와 뜨거운 사이!'라고 나와서 결국 동네방네 열애설이 퍼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당연히 [[안 봐도 비디오]]인 셈이다. 이 일화를 말하던 최양락은 "[[대한민국]]에 [[팽(성씨)|팽씨 성]]을 가진 개그우먼이 [[팽현숙]] 밖에 더 있겠냐고!!!"하며 격뿜했다.[* 팽씨 성은 국내에 3,000여명밖에 안되는 희성이다.] 이때 팽현숙이 은퇴했다는 소문을 고의적으로 퍼트려 팽현숙이 한동안 방송 출연을 하지 못했다. 참고로 최양락은 팽현숙이랑 오로지 두 번만 합방해서 애가 둘만 있다며 [[섹드립]]을 친 적이 있었다.[* 이건 이 부부와 유명 코미디 코너도 했고 충청도 출신이기도 한 [[김학래]], [[임미숙]] 부부도 과거에 다른 방송에서 이미 친 적 있던 드립이다. 최근에 언제 뽀뽀했냐는 얘기가 나왔을때 김학래가 "언제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임미숙이 "뽀뽀 안 했다. 결혼하고 딱 한번 뽀뽀해서 아들 하나 낳고 다 끝났다(?)" 드립을 쳤다.] 이외에도 처음 선배와 후배로 만난 사이라서 아직도 부부관계 할때 최양락이 "누워!" 하면 팽현숙이 "네 선배님"이라고 한다는 개그도 쳤다. [[1991년]] 말 SBS 개국과 함께 SBS 희극인실 실장 자리[* [[명랑히어로]]에서 [[김구라]]가 SBS 희극인실 소집에 안 나왔다고 SBS 희극인실 실장인 최양락이 식당 술자리에서 김구라를 때렸다고 밝힌 바 있다. 그것도 최양락이 구두신은 발로 김구라의 무릎을 세게 차서 서 있던 중심을 잃게 만들었을 정도라고 한다.(대신 당시 최양락은 이날 김구라를 우연히 만나기 전에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고 한다.) 김구라는 대놓고 이를 "형님이 그때 제 쪼인트를 까셨다"라는 쌍스러운 어휘를 써서 이야기 했는데, 이에 대해 훗날 최양락은 "그냥 내가 당시 술에 많이 취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혼냈다고만 이야기하면 되지. 어떻게 방송에서 쪼인트라는 말에 깠다라는 말까지 쓰냐"며 적반하장격 항변을 했다. 김구라는 "아니 형님, 쪼인트를 쪼인트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합니까?"라며 다시 항변했다. 물론, 이게 잘한 짓은 아니지만 김구라의 무명시절 개념상실한 행태로 인해 본의아니게 최양락이 김구라를 제대로 참교육을 해줬다는 농담도 있다. 이후 최양락은 이경실의 유튜브에 나와서 자신이 SBS 개그맨 실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한게 "개그맨들 사이에 행해지던 폭력을 없앤 것"이라고 말하며 김구라와의 일화를 사실상 부정했다.]를 받고 이적한 뒤로는 주로 MC위주로 활동했다. [[1994년]] [[4월 24일]] 첫 회부터 SBS의 일요 아침 예능인 [[좋은 친구들(예능)|좋은 친구들]]을 진행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첫회부터 1995년 10월 22일까지는 [[이봉원]], 1995년 10월 29일부터 1996년 8월 18일까지는 [[소방차#s-3|정원관]], 1996년 8월 25일부터 98년 10월 11일까지는 [[남희석]]과 함께 공동 MC를 맡은 바 있다. 하지만 [[1998년]] 10월 11일 방송을 끝으로 [[박수홍]]에게 바통을 넘겨주면서 ‘좋은 친구들’에서 하차하게 된다.[* SBS 개국 당시, KBS에서 끌어왔던 개그맨들이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토사구팽 형식으로 내쳤는데 최양락 역시 이에 말려들었다. 아이러니한건 최양락의 좋은 친구들 후임인 박수홍도 KBS 출신이었다. 근데 박수홍은 반대로 좋은 친구들에서 남희석과의 케미로 승승장구하며, 박경림 김장훈과 새 프로그램도 하고 이후 야심만만까지 쭈욱 나아가게 되었다. 사실 좋은친구들 전에도 이미 기우토로 차태현과 대박을 냈었다.] 여담으로 이 하차 비화를 [[아는 형님]] 2021년 4월 10일 편에서 팽현숙과 함께 밝힌 바 있다. 당시에는 조연출 통해서 "부장님이 보재요.", "국장님이 보재요." 그러면 거의 99%가 상을 준다는 이야기이거나, 새 프로그램 관련 논의 였는데 표정이 이상했다. "최양락 씨가 좋은 친구들 몇 년 하셨죠?"라고 해서 "5년 했는데요,"라고 하니 "많이도 하셨네. 이제 이런 프로는 후배한테 넘겨주고."라고 했다고 한다. 팽현숙은 당시 최양락과 비슷한 또래의 연령의 게스트 [[민경훈]]을 가리키며, "쟤보고 늙었다고, 너 방송 되게 오래하지 않았냐?"고 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식의 하차였다고.[* 사실 개편 등 얼마든지 좋은사유로 둘러댈 말이 있었을텐데 아이돌 이름도 잘 모르지 않냐는 노땅 취급을 하며 아예 내보낼 작정을 했다고 한다. 사실 방송국 입장에서 시청률도 고공행진이었고 분위기 좋은 상황에 딱히 하차 명분이 없던것도 맞았다.] 1999년 2월에는 [[김미화]]와 함께 진행을 맡아왔던 KBS 2TV [[코미디 세상만사]]에서도 스스로 하차했다.[* 이 과정에서 첫 회부터 MC를 맡아 온 김미화는 타의로 그만뒀다.] 이후 팽현숙은 홧김에 열 받아서 "'[[호주]]로 이민 가자'고 그래서 이민을 갔다"고 한다. [[https://entertain.v.daum.net/v/20210411060010362|관련 기사]] [[1999년]] [[8월 2일]] SBS 코미디 살리기[* 초창기에는 오디션식으로 심사를 하는 위주로 진행 하다가 후반기에는 그 오디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참가자들이 개그코너를 진행 하는 위주로 변경하였다.] 의 공동 진행을 맡아 컴백했다. 그러나 진부한 형식의 개그와 여러 차례의 언어폭력으로 거침없는 비판을 받아 4개월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으며 급기야 1999년 9월부터 김미화와 함께 다시 게스트로 합류한 코미디 세상만사는 SBS 기분좋은 밤 탓인지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고 다음 해 봄 개편 때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공교롭게도 2000년 2월 3일부터 기분좋은 밤 MC를 맡았던 박수홍은 좋은 친구들의 최양락 후임이었다. 게다가 최양락은 2000년 1월 22일 시작한 KBS 2TV 일요시트콤 반쪽이네로 첫 시트콤 출연을 했는데 대사나 연기, 장면설정 등이 모두 뭔가 어설픈 구석이 많았다는 지적을 받으며 10%대 미만의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3개월(4월 29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 작품은 출연진 대다수가 시트콤 첫 출연이었고 작가와 PD 모두 시트콤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같은 해 3월 초 방영 예정이었으나 전체적인 방송일정 변경 때문에 첫 회가 2000년 1월 22일로 앞당겨져 서둘러서 밤샘 제작을 해야 했다.] 박수홍도 KBS 2TV의 시트콤 마주보며 사랑하며로 첫 시트콤 출연을 했는데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종영했다. 최양락은 [[2000년]] 다시 MBC로 옮겨온 후, 일요일 낮에 코미디 닷컴이란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바둑 대국을 패러디한 [[알까기]] 대국으로[* 2001년 봄 개편 때 <코미디 닷컴>이 폐지된 뒤 월요일 밤에 신설된 <오늘밤 좋은밤>으로 옮겨 계속 방송되었지만 '알까기', '추억은 방울방울' 등의 간판 코너가 2001년 9월 24일 종영된 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그 해 가을 개편(10월 29일)으로 막을 내렸고 MBC는 그 이후 1년에 2개 이상 코미디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았다.] 또 한번 큰 인기를 얻었다. 이때 아내 팽현숙의 권유로 도전한 단발머리가 지금까지도 시청자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알까기의 성공 이후부터는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진행자로 계속 활동했다. [[경인방송]](ITV)[* 2001년 가을 일본에서 돌아온 뒤 방송 활동 재개작이었던 SBS <코미디쇼 오 해피데이>의 조기종영 이후 실의에 빠진 [[이봉원]]이 <소문만복래>란 프로그램을 통해 최양락과 재회했고 이봉원은 해당 프로그램으로 TV 고정 출연을 재개했으며 그 이후에 한동안 경인방송 위주로 활동해 왔는데 [[김경식]]이 당시 최양락과 이봉원이 나온 iTV 고정 출연 프로그램( '소문만복래', '러브 러브', '코미디쇼 4막5장', '최양락 이봉원의 금요천하') 후보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최양락, 이봉원 등 SBS 시절의 선배들과 같이 연기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고사했다.] 외에는 TV 활동이 뜸할 뿐 방송 활동은 계속 하고 있었다. 마침내 [[2009년]] 야심만만 2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일명 '최양락 젖꼭지의 변'으로 웃음폭탄을 터뜨리면서 올드팬뿐만 아니라 최양락의 [[리즈 시절]]을 모르던 어린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았다. 이후 '''레전드의 복귀'''라는 화려한 상찬을 받으며 야심만만 2 MC까지 꿰찼으나[* 1999년 '코미디 살리기' 이후 SBS 고정 MC 복귀를 했는데 2001년 가을 '이주일 최양락 남희석쇼'로 SBS 복귀를 할 예정이었던 게 [[이주일]]의 폐암 판정으로 무산된 일이 있었다.] 오래지않아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완전 복귀는 실패했다. 그 전에 명랑 히어로 이봉원 회고전 편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엄청난 입담을 보여주며 MC 자리를 얻고 본인 역시 회고전까지 출연했으나...역시 오래지않아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2012년]] [[12월]],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10년 간 진행한 공로로 최양락은 [[골든마우스|브론즈마우스]]를 수상했으며,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13년]] [[3월 3일]]에 KBS 창사 40주년 특집 [[개그 콘서트]]에서 [[김학래]], [[임하룡]], [[장두석]], [[이봉원]], 이경래 등 올드 개그맨들과 함께 오랜만에 개그 무대에 올라섰다. 본인의 히트작 <괜찮아유>와 <네로 25시> 등에 출연하여 녹슬지 않는 희극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네로 25시>에서는 [[김준호(코미디언)|김준호]], [[김대희]], [[홍나영]], [[신보라(코미디언)|신보라]] 등 개콘의 주축 후배 개그맨들과 놀라울 정도로 척척 맞는 개그 호흡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Lynt8lBCmcA|네로 25시]], [[http://www.youtube.com/watch?v=b21GduJRgUs|괜찮아유]]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14년 간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http://www.hankookilbo.com/v/5b1f4ecde62c43459e9272edb462af35|'''갑자기 짤렸다.''']] [[MBC 표준FM]]의 효자방송으로 10년을 넘게 군림하던 시사풍자 라디오였는데, 외압으로 작별인사도 못 하고 짤린 것. 이 프로그램은 [[배칠수]]나 [[안윤상]]처럼 대통령과 여러 정치인 성대모사를 잘하는 개그맨들을 출연시켜서 라디오 꽁트를 자주 했는데, 여기서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희화화된다며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공격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때 생긴 프로그램이라 김대중과 노무현 역시 희화화 되었음에도 김대중, 노무현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다가, 보수정권이 되자 일이 터진 것. 물론 알기는 안 것이었는지, 마지막 날 방송의 끝곡이 '또 만나요'였으니... 2주 간 대타를 뛴 DJ는 학교 후배인 가수 [[박학기]]. PD저널의 폭로에 의하면 [[높으신 분들]]의 외압 때문이라고 밝힌 상태. 방송에서 잘리고 거의 한 달간은 위의 [[팽현숙]]이 운영하는 음식점 한구석에서 식음도 전폐하고 내내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고 한다. 후속 프로그램은 "원더풀 라디오 --할매-- [[김태원(음악인)|김태원]]입니다". [[http://m.tf.co.kr/read/entertain/1647597.htm|더 팩트의 보도]]를 따르면 라디오에서 퇴출당한 이후에 술로 날을 지새웠다고 한다. 아내 [[팽현숙]]의 권유로 현재는 가게에 나와서 주차관리 등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말하는 것 자체를 피할 만큼 대인 기피적인 모습도 보여 라디오 퇴출이 최양락 개인에게 상당한 충격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하차 통보를 받기 전에 MBC 라디오국 간부들이 인사를 받지도 않고 무시하거나 딴청을 피우는 등의 '''알아서 나가라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2020년부터 [[JTBC]]의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부인 [[팽현숙]]과 함께 출연하며 다시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KBS 2TV]]에서 방영 중인 [[살림하는 남자들]]에서도 출연했지만 현재는 하차했다. [[2018년]] [[11월 26일]]부터 [[TBN 한국교통방송]] '최양락의 탄탄대로' 진행을 맡게 되어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종영 후 2년 6개월 만에 라디오 DJ로 복귀했다([[http://v.media.daum.net/v/20181123164729710|관련 기사]]). 첫 방송 당일 아내 팽현숙이 게스트로 출연하여 "왕의 귀환을 축하한다"라는 화환을 전달하며 라디오 DJ 복귀 소감을 밝혔다. 한밤의 교차로 주말 DJ를 진행한 가수 추가열도 같이 출연했으며, 동료 코미디언 [[김보화]], [[김학래]]와 전화 연결하여 라디오 DJ 복귀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심지어 심형래도 출연했다.''' [youtube(J9lAit1LPVE)] 매주 월요일에는 딸 최윤하가 고정 출연했으나 [[2020년]] 봄 개편으로 [[4월 17일]]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후임 진행자는 [[이숙영]]. 2020년 9월 25일자로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