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용건 (문단 편집) === 6.25 이후 ===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 4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부수상]]에 임명되었다. 1953년 7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6.25 전쟁 중의 공을 인정받아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6.25전쟁 [[휴전]] 후 [[1955년]]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숙청 당시 최고인민회의 재판장으로 지냈다. [[http://blog.naver.com/daimol23?Redirect=Log&logNo=120021462430|소련파 출신 망명가가 회고한 박헌영 재판기]] [[동북항일연군]] 및 교도려 시절엔 김일성보다 선배였지만 광복 후에는 김일성을 지도자로 추대하는데 앞장섰으며, 북한의 유일무이한 공개적인 권력투쟁 사건이었던 [[8월 종파사건]]에서는 김일성이 [[동유럽]] 순방을 위해 북한을 비웠을 때 반대파들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포착하고 보고하여 김일성이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민족보위상으로 있으면서 자신과 가까운 간부들을 승진시켰기 때문에 김일성의 의심을 사서 민족보위상에서 해임된다. 그러나 반 김일성 세력을 박살내는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숙청되지는 않고 상징적인 자리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직을 맡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