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익현 (문단 편집) ==== 문호개방 비판 ==== 이는 어느정도 우려가 이해되는 말인데, 실제로 최익현이 올린 여러 상소들을 보면 '''당대 제국주의 국가 특히 서양 열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국제 정세에 대단히 무지하고 교역 자체가 상호간에 이익을 주는 점에 대해 경제적인 지식이 부족하다 다만 기본적으로 조선의 양반층들은 교역으로 인한 이득보다 그로 파급될 새로운 지식과 상업계층등 사회 변화에 대해 유교 이념상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는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최익현만의 한계라곤 볼수 없다. 이미 청나라에서는 서구 국가들은 교역 이익을 추구하지 영토에는 관심이 적다는것을(러시아 제외) 파악하고 조선에게 서양 열강들과의 수교를 매번 강요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서구 열강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식민화 하는건 영토적 야심 아니냐 하겠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같은 부족-씨족 사회는 국가 체제를 세우지 못했고, 식민지도 18세기 이후로는 계몽주의와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노예무역을 금지하고, 땅을 뺏고 귀금속을 약탈하는 형태에서 교역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바뀐지 오래였다. 그래서 미국은 납세자의 세금을 미개인들 먹여 살리는데 낭비 할수 없다는 이유로 식민지 개척에 나서지 않았고, 독일 조차 비스마르크가 쓸데 없이 돈 안되는 식민지로 영국과 마찰이 불필요 하다고 보았다. 전세계에 식민지가 있었다 해도 영국의 인도와 말레이반도, 프랑스의 인도차이나를 제외하면 식민지 운영은 적자 내지 본전 치기였다. 이미 차지한곳은 어쩔수 없다쳐도 이미 식민지에 투자할수록 치안, 세무, 교육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했고 그럴수록 민족감정이 성장하는 악순환으로 식민지 운영에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이는 식민지 지배주민에 대한 온정주의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제국주의로 통치하고 산업화를 시키려면 기초적인 하급 인력을 교육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교육이 개화와 민족주의의 성장이 퍼져 나가는것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세기 후반까지 서양열강들이 조선을 그대로 둔것은 조선이 먹을가치가 없다고 손절했기 때문인데 뜬금없이 조선조정의 대책없는 고립주의와 위정척사파들의 활약 때문에 조선이 독립을 지켜냈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면 곤란하다. 결정적으로 문호 개방을 안하면 잘해봐야 평생 그모양 그꼴로 조선을 운영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역사적으로 옳은 결정인지는 아닌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이는 민족주의 국사학계에서도 개항 자체의 강요성을 문제 삼지 개항 자체를 계속 거부했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견은 전무하다. 그런데 최익현의 의견대로 서양물건은 죄다 불태우고 서학을 접하면 다 쳐죽이라는 주장이 옳다고 하면 곤란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