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익현 (문단 편집) === [[위정척사]] 운동의 전개, 보수적 성향 === 우선 [[위정척사]]란 송시열 계열의 주자 [[성리학]] 학통을 제외한 모든 학문을 배척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이어져온 조선의 통치 질서를 지키려 했다. 결론적으로 그가 지키고자한 것은 [[성리학]]을 통해 철저히 지켜온 기득권이다. 따라서 서인 노론정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중심인 만동묘와 서원을 철폐한 [[흥선대원군]]은 패도정치이며, [[동학]]은 토비떼이고 [[천주교]]는 사학(邪學)이다. 따라서 1894년 [[청일전쟁]] 및 [[동학농민운동]]에도 농민들은 체제를 위협하는 비적떼이고 [[갑오개혁]]도 일본이 시켜서가 아니라 주자성리학 이데올로기에 충돌하기 때문에 반대했다. [[1895년]] [[을미사변]]이 발생하고 [[을미개혁]]이 있었을 때도 계속해서 반대를 고수하였으며, [[1896년]] [[단발령#s-1|단발령]]이 일어났을 때는 [[상투]] 자르는 것을 맹렬히 반대하며 내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는 자를 수 없다는 상소문을 올렸으나 바로 왕명(王命) 거역 및 반역 미수죄로 체포되었다. 그가 했던 이 한 마디는 유생들과 보수 성향의 인사들에게도 교훈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후에는 왜놈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 [[매국노]]들이 들끓는 조정에 있어봤자 심신(心身)이 더러워지게 될 뿐이라며 관직을 내놓고 사퇴하였으며,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내려주었지만 모두 고사하고 향리에서 후자들의 교육에 힘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