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인영 (문단 편집) == 지도자 경력 == 1992년까지 최인영은 [[울산 현대]]의 주전 수문장으로서 활약했으나 코칭스태프와 마찰로 인해 이듬 해인 1993년부터 서서히 출장 기회를 잃었고 주장까지 반납하는 상황에 이른다. 덕분에 구단 측에서는 당시 신입으로 입단해 골키퍼로서 소질과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김병지]]를 주전으로 키우기로 마음먹었고, 최인영은 후보로 밀리는 상황이 되며 주전 자리를 [[김병지]]가 대체하기 시작한다. 1994년부터는 미국 월드컵 대표팀 합류로 인해, 그리고 월드컵을 마치고서는 이미지가 워낙 안 좋아진 탓에 한 해 동안 프로리그에서 6게임을 뛰는데 그치고, 1995년에는 겨우 1경기 출장, 마지막 해인 1996년에는 아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사실 그는 이미 1995년에 은퇴를 결심했으나, 주전 김병지는 국가대표로, 신인 골키퍼 [[서동명]]은 올림픽대표로 발탁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구단과 [[고재욱]] 당시 감독이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은퇴를 미뤄달라고 부탁해 1996년까지 선수등록을 했다고 한다.] 사실 이 무렵부터 최인영은 선수보다 '''플레잉 코치'''의 개념에 가까워서, 본인이 경기를 뛰는 것보다는 [[김병지]]를 비롯한 후배 골키퍼들을 조련하는데 더 큰 비중을 두며, 본인이 실질적으로 바라고 있었던 후배들의 길을 터 주는데 주력하게 된다. 덕분에 [[김병지]]는 같은 구단 직속 대선배인 최인영으로부터 골키퍼에 대한 노하우와 전문적인 지도를 아낌없이 전수받으며 국내 최고의 골키퍼로 성장하게 되고, [[울산 현대]]를 '''"골키퍼 명가"'''로 발돋움하게 한다. 그래서 미국 월드컵 전후로 약 3~4년 간의 마지막 현역 활동 기간은 최인영에게 [[흑역사]]라기 보다는 이미 그 전부터 은퇴를 고려하고 지도자의 길을 미리 준비하던 그에게 '''지도자가 되기 위한 사전 준비 기간'''이었던 셈이다. [[파일:external/m.kfa.or.kr/20071218105011.jpg]] 1996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정식으로 은퇴한 최인영은 그대로 [[울산 현대]]에서 골키퍼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당시 [[울산 현대]]에는 전문적인 골키퍼 코치가 없었기에 구단측에서는 골키퍼로서 화려한 경력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최인영을 적격자로 꼽았던 것이다. 2003년까지 울산에서 골키퍼 코치 생활을 했던 그는 2004년에 브라질과 잉글랜드에서 6개월씩, 총 1년간 지도자 연수를 떠났다. [[파일:external/www.segye.com/aoo0209-18-1.jpg]] 이후 [[경일대학교]]에서 수석코치 겸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던 최인영은 2006년, 최강희 감독의 러브콜을 받아 [[전북 현대 모터스]]의 골키퍼 코치를 맡게 됐다. 프로팀의 코치로 복귀한 그이지만, 언젠가는 어린 골키퍼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만큼 자신이 현역 시절에 골키퍼 코치 없이 힘들게 성장해 왔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에게는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러나 2013년 계약 만료 후 해임되며 코치직도 그만두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